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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고귀한 생명 나눔… ‘신기한’ 52명의 아름다운 동행 [뉴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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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본부 ‘신장 기증자들의 한라산 산행’ / 80대 부부… 모자·부자 기증자 / 보란 듯 건강한 모습으로 동참 / 새 생명 얻은 수혜자들도 동행 / “막막한 투병생활 끝내줘 감사” / 7명에 새삶 준 김선웅군 추모 / 장기기증 편견 딛는 계기 마련

“신장 두 개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눠 주라고 있는 것 같아요.”

30여년 전 남편과 아내가 함께 생면부지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권재만(86)·김교순(81) 부부는 지난 12일 고령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한라산 산행에 도전했다. 이들 부부는 “신장을 기증한 뒤 더 열심히 건강관리를 했더니 오히려 체력은 젊은이 못지않다”며 등반에 열의를 보였다.

고귀한 생명 나눔을 실천한 신장 기증인과 기증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식인이 함께 한라산 산행에 나섰다.

13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새생명나눔회(신장기증인과 이식인의 모임)와 ‘신기한 산행’(신장을 기증한 사람들의 한라산 산행)을 했다. 한화생명이 후원하는 이번 산행에는 신장기증인과 이식인 52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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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나눔회 신장기증인과 이식인들이 지난 12일 한라산에서 ‘신기한 산행’(신장을 기증한 사람들의 한라산 산행) 도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부부가 전혀 모르는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7쌍과 대를 이어 생명 나눔을 실천한 부자·모자 신장기증인, 자매기증인 등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가족단위 기증인들이 함께했다.

신장과 간 기증뿐 아니라 헌혈도 500회 이상 참여해 ‘헌혈왕’이라고 불리는 손홍식씨는 “생명 나눔을 실천한 뒤에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산행이라 더욱 힘이 난다”고 전했다.

신장을 이식받고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명의 이식인도 동행해 건강을 회복한 기쁨을 기증인들과 함께 나눴다. 한 신장 이식인은 “언제 끝날지 모를 투병생활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한 저에게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생명을 선물해 주신 본부와 기증인께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 제주 라파의 집을 방문해 만성신부전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환경정리 등 봉사활동을 한다. 지난해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모두 내어준 스무살 제주 청년 의인 고(故) 김선웅군의 사랑과 나눔을 기억하는 자리도 이곳에 있다. 라파의 집은 고인을 추모하는 ‘생명의 나무’가 심긴 곳으로 의미를 더한다.

김군은 지난해 10월 3일 오전 3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무거운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후 장기기증으로 7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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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신장이식을 기다리며 혈액투석을 하는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제주 라파의 집 정원에 김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생명의 나무를 심어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김군의 선한 이야기가 알려진 후 장기기증 희망등록이 크게 늘었다.

매일 7.5명의 환자가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고통 속에 숨을 거둔다. 새생명나눔회 회원들은 이번 산행을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는 한편 많은 환자가 이식만 받으면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1991년 국내 최초로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도 아내 홍상희씨와 부부 기증인이다.

박 이사장은 “신장 기증·이식 후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새생명나눔회 회원들과 10여년 전 백두산에 오른 데 이어 이번에 한라산을 오르게 돼 뜻깊다”며 “정상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처럼 장기기증운동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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