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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문화와 삶]조용한 공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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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깥에서 귀마개를 끼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수도권 인근에 살고, 사무실 없이 불규칙하게 이곳저곳 오가며 일하기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혼자 일을 하거나 바깥 업무 중에 뜨는 시간이 생기면 도시생활자 프리랜서들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카페를 주로 찾는다.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곳은 무엇보다 조용한 곳이다. 일하기에 좋고 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공간을 찾아갈 일말의 여유도 없거나 간혹 아무리 돌아다녀도 조용한 곳이 없을 때가 있다.

경향신문

많은 이들이 비유하듯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감을 수 없는 탓에, 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예측 불가능한 소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귀마개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는 비장의 무기였다. 귀마개는 집중을 방해하거나 평온을 깨뜨리는 수만가지 요인 중 소리 하나만큼은 흐리게 해줄 수 있었다.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지만, 조용함의 힘은 대단했다. 소리를 덜 들으면 확실히 덜 피곤하고, 덜 산만했다.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든 나는 카페는 물론이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심지어는 이미 꽤 조용한 도서관이나 집에서도 귀마개를 끼우게 됐다. 바깥소리를 스스로 ‘뮤트’하는 것에 차츰 익숙해지자 평소보다 소리에 예민해져서 날이 설 때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평소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 소리를 세심히 들으며 도시의 소리풍경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 공간의 소리는 대체로 그곳을 점유한 사람들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졌다. 어떤 이들은 ‘서울은 너무 시끄럽다’라는 식으로 한 도시 전체를 시끄러운 곳으로 일축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그런 불평 섞인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언제나 시끄럽기만 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 소란스러운 곳이 마냥 거북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많은 소리가 오가는 공간에는 특유의 활기가 있고, 가끔은 적당히 소란스러울 때 부담 없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소리환경을 마련해두는 것이 으레 그 공간에 기대되는 미덕일 때도 있다. 하지만 짧은 경험상 도시생활에서 느낀 아쉬움이 있었다면, ‘항상 조용한 곳’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인구밀집지역을 오가면서 그곳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게 애초에 어불성설인 것 같긴 하지만, 조용함의 힘을 잘 알게 된 나는 일상 속에서 잠잠한 공간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게 됐다.

도시마다 특수한 상황과 문화가 있는 만큼 해외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나, 유독 마음에 깊게 남은 특별한 경험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마치 서울 지하철의 ‘약냉방칸’처럼 곳곳에 ‘조용한 칸’으로 표시된 곳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곳에서는 열차 소리, 문소리, 안내방송 외에는 정말 별다른 소리 없이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곳이 지하철이어서가 아니고, ‘조용한 칸’이라는 분리된 공간에서만큼은 고요함을 즐기자는 약속이 수월하게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소리가 넘쳐날 수밖에 없는 이 도시생활에서는 소리에 대한 피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생활자들의 마음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어떤 업장에서는 간혹 시끄러운 손님은 퇴장당할 수 있다거나, 조용한 공간 유지를 위해 특정 손님층은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내걸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날 선 태도를 취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조용함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합의를 마련하는 약속의 방식을 꿋꿋이 지향했으면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공적 영역의 소리를 고요히 유지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섬세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한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그것은 무언가를 제거하고 조용함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공동의 목표점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천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쾌적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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