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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상엽의 공학이야기]시스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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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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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과 4일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에서는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퓨처 카운슬 서밋이 개최되었다. 이 글로벌퓨처 카운슬에서는 그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미래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이 서밋은 글로벌어젠다 카운슬로 시작하여 현재 38개의 글로벌퓨처 카운슬로 변신해 이어지고 있다. 이 카운슬들에 속한 약 700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이틀간 난상토론을 벌여 앞으로 1년간 심층 연구할 내용을 정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또한 여기서 토의된 주요 내용들은 1월 말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다보스포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38개의 카운슬 명칭들만 보아도 미래에 우리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

사회·경제·문화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민첩한 거버넌스, 도시와 도시화, 소비, 디지털경제와 새로운 가치 창출, 개발금융, 에너지, 첨단 제조와 생산, 금융시스템, 지정학,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대중의 선한 일, 건강, 인도주의,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권리, 인프라 구조, 투자, 국제교역과 투자, 장수, 매체와 오락 및 문화, 이동, 신경제, 신교육과 일, 신평등과 포용, 투명과 반부패, 생물다양성 카운슬들이 있다. 기술과 관련해서는 생명공학, 사이버 보안, 에너지 기술, 신네트워크 기술, 양자컴퓨팅, 우주기술, 정신건강을 위한 기술, 가상 및 증강현실 카운슬들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지역 및 나라 카운슬들이 있는데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반도 카운슬이 있다. 대한민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한반도 카운슬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올해는 이 38개의 카운슬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세부 기술 중심의 3개 카운슬이 더 있었는데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카운슬이 그 것이다.

이틀에 걸쳐 어떠한 토론을 했는지는 내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생명공학 카운슬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생명공학은 건강, 농업, 산업 등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번 생명공학 카운슬에서는 그중에서도 생명공학 기술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 다루기로 했다. 특히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 기술들이 진단과 치료 시스템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바꾸고 있는지와 선진국 대비 혜택이 적은 개발도상국의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시스템 설계를 논했다. 자기가 속한 카운슬에서만 이틀 내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크로스 카운슬 세션도 있어서 관련된 다른 카운슬 사람들이 모여서 융합적인 토론도 했다.

인공지능 카운슬에서는 생명공학 카운슬의 진단과 치료 시스템 설계에 있어서 인공지능 기술의 역할, 민첩한 거버넌스 카운슬에서는 이러한 진단과 치료 시스템 설계 시에 필요한 거버넌스에 대한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이와 같이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협업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더욱 중요하게 다룬 주제는 시스템 리더십의 필요성이었다.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사이버 안보 등 크고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이때 필요한 것이 전체를 보고 시스템 수준에서의 변혁을 촉진하고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리더십이다. 이는 내가 연구해온 시스템생물학과 유사하다.

생물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다. 생물학자들은 이 복잡한 생물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전략으로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 예를 들어 DNA, RNA, 그리고 수많은 단백질들에 대해 각각 잘 이해하면 생물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십년간의 그러한 생화학, 분자생물학 연구들은 전체 생물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조절작용,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한 상호작용을 동시에 이해하지 않고는 생물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학문이 복잡한 생물체 구성성분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들을 생물 시스템 전체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스템생물학이다.

두어달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리사 드라이어, 데이비드 나바로와 제인 넬슨팀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시스템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시스템 수준에서의 변혁을 이끌기 위하여 제시한 것은 ‘CLEAR 프레임워크’이다. C는 참여해 행하고, L은 문제를 보고 다른 이해당사자들로부터 배우고, E는 모든 참여자와 함께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 보다 활발한 참여를 유도하고, A는 책임을 가지고 집행하고, R은 실천한 내용을 되돌아보고 필요시 수정한다는 내용의 영어 약자이다. 이를 통한 시스템 리더십의 특징은 어느 한 명이나 집단이 전체 시스템을 조종하지 않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책임을 지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간다는 철학, 나는 할 수 있고 우리는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현 세상에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나는 기조 세션에서 시스템 리더십을 구현하기 위해 하버드대에서 제시한 ‘CLEAR 프레임워크’를 ‘VERY CLEAR 프레임워크’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VERY의 V는 비전과 가치, E는 열정, R은 실현, Y는 올 한 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영어 약자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이기적 리더십에서 벗어나 시스템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때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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