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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서 日정부 상대로 '위안부 재판'… 양국에 또다른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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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11명과 유족들이 낸 손배소, 3년 만에 첫 재판]

기업 대상 징용재판과 달리 日정부 대상 소송 … 외교적 파장 클 듯

'주권면제' 원칙따라 한국에 재판 관할권 있는 지가 가장 큰 쟁점

재판 진행 땐 원고 승소 확실, 국내 日정부 자산 강제집행 대상으로

한·일 관계에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역사 재판'이 13일 시작됐다. 2016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1명과 유족들이 "1인당 위자료 2억원씩을 지급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이다. 소송 제기 3년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부 심리로 이날 오후 5시에 열린 재판에서 원고 측인 민변 소속 이상희 변호사는 "금전 배상이 목적이 아니라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사법부에서 확인받기 위한 소송"이라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는 무릎을 꿇고 "저희는 아무 죄도 없고, 일본에 죄가 있다"고 울먹였다. 일본 측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 측에 다음 재판(내년 2월 5일)까지 입증 자료를 내라고 한 뒤 20여분 만에 재판을 끝냈다.

위안부 재판은 일본에서 이미 원고가 패소한 재판이란 점에서 징용 재판과 맥락이 같다.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며 일본 법원에 낸 국가배상 소송에 대해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릴 경우 징용 판결처럼 양국 법원의 판단이 충돌하면서 다시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을 상대로 한 징용 소송과 달리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란 점에서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 행위, 곡물·광물 수탈, 창씨개명 등 일제의 불법적·강제적 행위 대부분에 대해 피해자와 후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일본에 죄가 있다” 울먹인 위안부 피해자들 -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왼쪽 휠체어), 이용수 (가운데), 길월옥(오른쪽) 할머니가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열렸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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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은 피해자들이 타국 정부를 대상으로 자국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는지가 쟁점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에 재판 관할권이 있는지부터 따지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主權免除)'를 내세워 소송이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권면제란 한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국가 간 평등 원칙을 고려해 외교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이 원칙이 적용되면 법원이 심리하지 않고 각하(却下) 판결을 해야 한다. 재판장인 유석동 부장판사도 이날 "주권면제라는 큰 장벽이 있다. 설득력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주권면제는 국제법 원칙으로 통용돼 왔다. 대표적 사례가 일명 '펠리니 재판'이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00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루이키 펠리니씨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관할권을 인정해 배상 판결을 했다. 이에 대해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아예 미국은 '주권면제법'을 만들어 다른 나라의 공권적 행위를 소송 대상으로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재판에서 원고 측은 "위안부 소송과 같이 반인도적 행위가 문제 된 사건에서는 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일부 국제인권법 학자들도 같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국 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을 진행할 경우 승소는 확실하다. 위안부 동원의 불법성은 1993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로 확인됐다.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위안부 동원의 불법성은 사실로 확인했다. 따라서 소송이 진행되면 한국 법원이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없다. 이 경우 큰 파문이 예상된다. 주진열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자산이 강제집행 대상이 되고 그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외교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작년 대법원이 징용 판결에서 '소멸시효'를 사실상 배제한 것까지 고려하면 소송 대상이 넓어질 수 있다. 민법상 소송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는 최장 10년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징용 판결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일본 기업의 주장을 "피해자들이 그동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이유로 배척했다. 주권면제도 인정하지 않고 소멸시효까지 배제한다면 이론적으로는 3·1운동, 창씨개명 등 일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모든 행위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견해가 있다.

최원목 이대 로스쿨 교수는 "최소한 법원은 사건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주권면제 여부를 좀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공시 송달로 피고 없이 재판하겠다고 한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주권면제(主權免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 국가 면제라고도 한다. 국가 간 평등 원칙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므로 외교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라는 취지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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