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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템스강 따라 구도심 재활성화…금융·상업 중심지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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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⑦금융 중심지 영국 런던 도클랜즈항

한때 대영제국 관문…2차대선 ‘화마’ 휩싸여

10m 수심 대형선박 입항 못해 무역량 급감

80년대 정부-법인-민간-주민 ‘합작’ 재생사업

경전철·공항…글로벌 금융단지 거대한 탈바꿈

기업 1400곳 이전·일자리 7만개 늘어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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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바꿔야 사람이 모입니다.”

영국 런던의 항만인 ‘도클랜즈’(docklands) 재개발 주역으로 평가받는 피터 웨이드(peter wade)의 말이다. 항만 부두노동자의 아들인 그는 1981년부터 도클랜즈 지역주민 협의체의 수석 대변인으로 일했다.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던 1987년 그는 재개발 반대 주민을 설득해 도클랜즈 재개발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도클랜즈는 런던시청에서 템스 강을 따라 동쪽으로 4㎞가량 떨어진 곳으로 항만 재개발의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 10월1일 오전 9시께 모건 스탠리, 에이치에스비시(HSBC), 비피(BP) 등 다국적 대기업이 몰려 있는 도클랜즈의 중심인 런던시 뉴엄구의 뱅크 거리는 출근길을 재촉하는 직장인으로 붐볐다. 하늘로 치솟은 마천루 사이로 군데군데 고층빌딩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옛 도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보행전용 다리가 보였다. 돛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로 만든 길이 180m가량의 이 다리도 직장인들로 분주했다. 다리 건너편에는 고층건물 사이에 옛 항만시설을 개조해 만든 2층짜리 집 10여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에릭은 “새 건물과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이다.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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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 거리에서 산책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가니 밀월도크가 나타났다. 도크 주변에는 새로 지은 건물과 옛 건물이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도크에 요트 한 대가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도크 한쪽에 자리한 수상 레포츠 시설에서 출발한 요트였다. 도크를 따라 마련된 산책로는 자전거 등 운동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산책로 한쪽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는 시민도 있었다. 산책길 곳곳에는 크레인과 부표 등 옛 항만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밀월도크 아래 지역에는 옛 항만 노동자들이 살던 집을 리모델링한 주택들이 즐비했다.

카나리 워프역에서 1987년 개통된 경전철 디엘아르(도클랜즈 경전철)을 타고 네 정거장 거리의 런던시티공항역에 도착했다. 런던시티공항은 도클랜즈의 로열도크(킹조지·로열앨버트·로열빅토리아도크)지역 재개발의 결과물이다. 디엘아르와 같은 해 문을 연 이 공항에는 킹조지도크와 로열앨버트도크 사이 안벽에 활주로가 있다.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는 노선이 운항하는데, 2015년 기준 400여만명이 이용했다. 승객 대부분은 금융산업 관계자다. 직장인 제임스는 “금융중심지인 카나리 워프 바로 옆에 공항이 있어 편하다. 잘 마련된 교통망 덕분에 재개발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인근에는 뉴엄구청사와 경찰서, 이스트런던 대학, 도서관 등도 위치했다. 공항 아래 지역에는 임대 주택촌과 초등학교, 병원 등이 보였다. 뉴엄구 보안요원 고팔 구렁은 “1982년 네팔에서 영국으로 이민온 뒤 이곳에서 살았다. 슬럼가였다. 재개발 사업이 끝난 뒤 일자리가 생겼고, 사람들이 몰렸다.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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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도심 바로 옆에 자리한 도클랜즈는 한때 영국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19세기 템스강을 따라 해상무역이 활발해지자 런던의 관문 항이었던 도클랜즈는 조선업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최고의 무역항도 2차 세계대전의 화마를 피할 순 없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클랜즈는 철저히 파괴됐고 전후 영국 정부는 10여년 동안 도클랜즈 부흥에 온 힘을 쏟았다. 시련은 연이어 찾아왔다. 1960년대부터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10m도 안 되는 도클랜즈의 얕은 수심 때문에 대형선박들은 입항할 수 없게 됐다. 도클랜즈의 무역량은 급감했고 일감을 잃은 항만 노동자들도 떠나갔다. 도클랜즈의 쇠락이었다.

1967년 와인 터미널이었던 동인도도크 폐쇄를 시작으로 1970년 캐나다 목재 운반선이 드나들었던 서리도크, 1976년 서인도도크, 1981년 로열도크 등 모든 도크가 문을 닫았다. 항만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도클랜즈 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도클랜즈에만 10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녹슨 항만시설은 그대로 방치돼 흉물이 됐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쌓였다. 부랑자도 모여들었다. 관할 지자체만으로는 이곳을 재개발할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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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국 정부가 도클랜즈 재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1976년 재개발계획을 발표한 뒤 1981년 7월2일 개발공사격인 엘디디시(런던도크랜즈개발법인·LDDC·London Docklands Development Corporation)을 설립하고 토지 매입, 재개발계획 수립, 인허가 규제 조정 등 개발 권한을 맡겼다. 엘디디시 구성도 공무원을 최소화하고 민간중심으로 꾸렸다. 각 위원은 재개발 최고 책임자인 환경부 장관이 임명했고, 다달이 회의를 열어 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었다.

엘디디시는 2194만5000㎡ 규모의 도클랜즈를 아일오브도크, 워핑, 서리도크, 로열도크 등 4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에 나섰다. 이곳을 특별기업구역으로 지정해 건축규제를 완화하고 10년간 공·상업 시설에 과세 면제, 토지개발세 면제 등 개발회사에 재정적 혜택을 줬다. 민간투자·개발업체는 정부로부터 토지를 양도받아 터 조성한 뒤 매각하거나 임대했다. 영국 정부는 도클랜즈와 런던 도심을 잇는 경전철, 도시철도, 케이블카, 시티공항 등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했다. 도클랜즈 개발 비용 83억 파운드 가운데 영국 정부는 18억 파운드를 댔고, 나머지 65억 파운드는 민간자본으로 유치했다. 주요 인프라 구축에 정부 자금을 사용한 반면, 수익성이 높은 상업시설 등 개발은 민간에서 재원을 충당한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1992년 5월 부동산 경기침체, 같은 해 9월 검은 수요일(영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등으로 도클랜즈 개발에 위기가 엄습했을 때, 엘디디시는 유럽투자은행으로부터 9800만 파운드의 자금을 빌려 민간투자개발업체에 지원했을 정도로 재개발에 온 힘을 다했다. 도클랜즈 안 문화·편의시설 확충 등 공적 개발과 지역주민을 위한 직업훈련, 재교육 등 노동문제 해결에도 애쓴 것도 엘디디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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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만7000㎡ 규모의 아일오브도그에는 대기업과 호텔, 쇼핑센터, 다목적 체육관 등이 입주했다. 워핑(178만2000㎡)지역에는 세계무역센터와 백화점, 런던타워 등 상업·주거 복합지역이 들어서 관광객의 랜드마크가 됐다. 서리도크(270만6000㎡)는 복합 주거시설과 해양레저 시설 등이 위치해 있다. 로열도크(108만9000㎡)에는 유럽 각 도시로 갈 수 있는 런던시티공항을 비롯해 뉴엄구, 대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엘디디시는 18년 동안 도클랜즈의 성공적인 재개발을 마무리한 뒤 1998년 3월31일 해체했다. 도클랜즈 재개발에 따라 기업 1400여개 이곳으로 옮겼고, 일자리도 7만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도클랜즈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던 영국 정부는 재개발이 끝난 뒤 도클랜즈 운영권한을 지자체에 되돌려줬다.

도클랜즈 박물관에서 만난 뉴엄구민 래빈(38)은 “항만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도클랜즈 재개발을 눈으로 직접 지켜봤다. 정부-엘디디시-민간업체-주민이 협의를 잘했고, 여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비교적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이 정도로 성공한 재개발은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런던/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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