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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은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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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미 참전용사위원회(UWVC)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주최한 연례 퍼레이드에 참석,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욕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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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50]

(국내 한 보험사의 광고 카피처럼 '모두 주인공(트럼프 대통령과 탄핵 주도 정치권)을 볼 때 그 사이에 낀 미국 외교관의 고달픈 처지를 들여다봅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srt)'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혼란에 빠트리는 예상치 못한 발언과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직업외교관(Career Diplomat)들은 지난 대통령선거(2016년 11월) 이후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에서 오는 불안감, 변덕스러운 상사를 모시면서 느끼는 긴장감, 충동적 결정을 접하는 허탈감 속에서 지내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이제는 정치인들이 벌여놓은 판에 불려나가 시달리는 처지다. 미국을 대표해 우크라이나에 파견됐던 외교관들과 워싱턴에서 업무를 했던 국무부 관리가 애꿎게 청문회에 불려나와 텔레비전에 생중계되는 증언대에 서는 것이다. 직업외교관들은 트럼프와 그 주변 인물들이 벌인 일 때문에 자신들이 이유 없이 수난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은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 탄핵 조사에서 이뤄진 증언을 통해 일부 드러났다. CNN은 미 하원에서 지난주 나온 외교관들의 증언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직접 다뤘던 외교관들은 하원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증언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경솔하거나 충동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의식한 외교 당국자와 실무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알아내는 데 집중하는 한편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비하기 위해 에너지를 썼다. 또 외교관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서 대통령의 측근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애청하는 폭스뉴스를 시청해야 했다고 했다.

15일 청문회 증언대에 서는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는 트럼프 정부의 우크라이나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다가 지난 5월 경질됐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하원에 출석해 "내가 모자란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난 5~7개월간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진짜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친정인 국무부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줄리아니가 보복성 인사 조치의 배후라는 의혹이 짙은 가운데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국무부에 자신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된 것이다.

청문회에 불려간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와 윌리엄 테일러 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 대행도 윗선에서 전달되는 지침이 앞뒤가 맞지 않는 현실 속에 좌절했다고 하원에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보류를 해제하기 위해 뛰던 중 워싱턴의 관심은 그린란드 매입에 쏠린 것을 알아차렸다"며 "국가안보회의(NSC)가 이 문제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외교 일선에서 뛰던 이들을 트럼프 탄핵 여론에 불을 지피기 위해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세웠다.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려들어간 직업외교관들은 혹시나 자신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외교관들이 위기에 처했다"면서 "하원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증언의 신뢰도에 흠집을 내기 위해 가혹한 질문을 퍼부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이슈는 트럼프 시대 외교관들이 겪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오는 미국 외교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특명'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올해 한국의 분담액은 1조389억원이다. 그런데 내년 분담액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미국이 제시한 액수는 5조원을 훌쩍 넘는다. 미 국무부 관리들로 구성된 협상팀은 터무니없이 늘어난 액수의 항목을 채우려면 양국이 이미 체결한 협정을 벗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최대한 근거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에는 양국이 협상에서 합리적인 수준으로 잠정 합의에 도달했지만 미 협상대표가 본국에서 이를 승인받지 못해 최종 합의가 연기되기도 했다. 승인해주지 않은 최종 결정은 방위비분담금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탄핵 조사를 계기로 미국 외교관들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공개 발언하는 것에 대해 미 국무부 내에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좌충우돌 외교 정책의 한가운데서 정신줄을 붙잡고 있어야 했던 외교관들이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내용을 공개하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안두원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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