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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연합시론] 장점마을의 비극, 피해구제로 끝낼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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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전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인근 공장의 발암물질 배출로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리고 이 가운데 14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환경부는 14일 익산 장점마을의 암 집단 발병과 인근 비료공장의 유해물질 배출 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환경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발표로 주민들에 대한 피해 구제, 환경개선 조치 등의 길이 열렸지만, 민원 제기부터 이번 환경부 발표 때까지 수년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것으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과 배상, 무책임한 행정 기관에 대한 감사,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 등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의 불행은 2001년 인근에 금강농산의 비료 공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이 공장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는 연초박(담배잎 찌꺼기)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유기질 비료를 생산한 것이 문제였다. 비료를 만들려면 고온건조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이 배출됐다. 그런데 이 회사는 배출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그나마 있는 시설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유해물질이 마을의 공기 중으로, 또 땅속으로 배출됐다. 정확한 사용량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2009년부터 2015년까지 KT&G로부터 사들인 연초박의 규모만 2천t이 넘는다. 연초박 처리를 위탁한 KT&G는 "법령상 기준을 갖춘 업체와 적법하게 계약을 체결했다"는 입장이나 법적 책임이 전혀 없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이 공장이 들어선 후 악취, 물고기 집단폐사 등이 잇따르자 수차례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번번이 묵살되거나 형식적인 조사만 반복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익산시는 금강농산의 오염물질 처리와 관련해 10여차례나 위반 행위를 확인하고도 가동중단이나 폐업 등의 조처를 하지 않았고 어처구니없게도 오히려 이 회사에 환경우수상을 주기도 했다. 또 전북도, 익산시, 전북보건환경연구원 등은 2010년과 2017년 이 공장에 대한 조사를 벌여놓고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 사이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인근의 다른 마을, 그리고 오염에 직접 노출됐을 것으로 보이는 금강농산 직원들의 피해는 아직 집계도 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는 '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피해 구제를 신청하는 주민들에 대해 심의 절차를 거쳐 치료비, 사망위로금 등을 지급할 계획이지만 금액이 많지 않다고 한다. 주민들은 비료공장, KT&G는 물론 전북도, 익산시, 환경부 등을 상대로 손배소를 계획하고 있다. 법적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으나 연초박 처리를 위탁한 KT&G의 사후 관리 책임, 그리고 관련 행정기관들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 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중대한 사건인 만큼 조사 과정에서 해당 기업이나 관련 기관들의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일벌백계해야 한다. 이번에 그 위험성이 확인된 연초박은 아예 비료나 퇴비 원료로 재활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연초박을 위탁 처리한 전국의 다른 사업장에서도 혹시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반드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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