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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기고]‘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을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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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세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새롭게 탄생한 국가이다. 경제적인 발전과 정치적인 민주화를 세계에 자랑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국가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이나 새로운 행정수도 세종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의 중심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경향신문

서울 사대문 안을 채우고 있는 20세기에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과거로 시간을 돌려주는 건물이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이다. 경복궁이나 비원, 덕수궁, 경희궁이 없었다면 서울 중심부의 역사는 20세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복궁 복원을 2031년까지 완성하고자 하는 국가의 계획은 서울과 한국의 가시적 역사를 시각적으로 20세기 이전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국민의 숨은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전승된 문화는 그 자체로 퇴보가 아니라 진보이자 창조이다.

경복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날벼락을 맞은 문화기관이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민속학자인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치지만 용산 이전이 결정된 국립민속박물관을 체계적인 공론화 과정도 없이 세종시로 유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궁궐과 궁중민속도 중요하지만 현대 한국을 지탱하는 국민들의 민속문화와 이를 수집·연구·전시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중요성도 이에 못지않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천덕꾸러기처럼 이사를 다니느라 바빴다. 경복궁 수정전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경복궁 내 현대미술관 건물로 옮겼다가 겨우 안착한 곳이 현 건물이다. 민속문화와 걸맞지 않은 건물이기도 하고 야외민속촌도 조성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과 한국을 20세기 이전으로 끌어 올리고, 사대문 안 궁궐과 빌딩을 민속문화로 균형 잡아주는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문화는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의 예술문화와도 대비와 보완을 통해 문화를 완성시킨다.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시킨다는 이야기는 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방안이다. 세종시가 신도시라서 세종시 인접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의 주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위상을 잘 모르는 데에서 나온 정책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 현대화의 균형을 잡아서 창의적인 미래로 이끌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문화기관이다. 이러한 문화기관의 이전은 신중하게 행해야 하며, 용산 이전이라는 기존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공론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군사시설의 이전에도 오랜 토론을 통한 합의가 필요한데, 국립민속박물관이라는 문화기관의 이전에는 더더욱 오랜 논의 과정과 합의가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용산으로 이전시키는 방안과 함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대안이 있다. 바로 오랫동안 비어 있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로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세균 국회의원의 제안을 통해 공론에 부쳐진 방안인데, 송현동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는 것이 용산 이전보다 더욱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문화 전경을 유지함과 동시에 한국의 국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목적으로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민속문화를 보여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존치하는 것과 함께 시급한 것이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쉽게 민속박물관을 이용하도록 국립민속박물관 지방분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중부권과 영남권, 호남권에 하나씩 분관을 설치하는 것인데, 세종시에는 국립세종민속박물관을 건립하면 된다. 국립세종민속박물관에는 야외민속촌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데, 야외민속촌을 건립할 만한 부지가 세종시에 이미 조성되어 있고, 세금 투여에도 불구하고 사유화된 용인민속촌을 대체할 국립민속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정원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한국민속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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