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오늘의시선] 탈북민 추방, 反헌법적 조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부 억지스러운 논리 의혹투성이 / 강제북송 두 번 다시 되풀이 안돼

해상 탈북민 추방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북 인권단체들은 연일 정부의 강제북송을 규탄하고 있고, 야당도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일보

제성호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 전 외교통상부 인권대사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의혹투성이로 가득 차 있다. 법리적 측면의 검토가 뒷받침된 치밀한 대응이었다기보다는 ‘결과(추방)’를 미리 정해 놓고 사후에 끼워 맞추기식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억지스러운 논리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귀순 요청을 한 탈북민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탈북민이 귀순 ‘요청’을 한 순간 ‘(잠재적) 대한민국 국민’의 현재화(顯在化)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정신이다. 귀순 절차는 귀순 ‘의사표시’와 그의 ‘확인’으로 족하다. 이후 ‘수용 의무’만이 발생할 뿐이다. 정부가 마치 ‘귀순 허가권’을 갖는 것처럼 착각해선 안 된다. 합동조사, 범죄사실 인지(認知), 귀순 동기 판단 등은 부수적 절차이지 귀순 여부를 확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그의 ‘국민성’은 부정되지 않는다.

나아가 정부는 한국 국민을 해외나 북한으로 추방할 권한이 없다. 이번에 귀순 요청을 한 탈북 선원 2명도 마찬가지다. 추방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만 가능한 조치다. 이번 추방 결정을 함에 있어 출입국관리법상의 강제퇴거 규정을 준용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귀순 탈북 선원’은 엄연히 우리 국민임에도 이들을 외국인에 준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 자체가 반(反)헌법적이다.

또 준용은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다른 한편 북한이탈주민법 제9조는 이 법에 따른 보호대상 배제 사유를 정한 것이지 추방 근거를 명시한 게 아니다. 요컨대, 현행법상 귀순 의사를 표시한 탈북민을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부도 그러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이번의 강제북송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자의적·불법적인 처사라고 하겠다. ‘귀순 탈북민 북송 금지’원칙은 향후 남북한 간에 범죄인인도협정이 ‘입법사항에 관한 합의서’의 형태로 체결되는 경우 그 범위와 한도 내에서만 일부 수정될 수 있을 뿐이다.

정부는 탈북 선원이 밝힌 귀순 의사표시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이를 기초로 북송했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성 여부는 밀실에서 몇몇 고위관리들이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결정하는 게 아니다. ‘생명’이란 회복 불가능한 인권 침해와 연결돼 있고, 북한 정권의 ‘권력적·보복적 살인’에 대한 방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판단은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와 같은 공식기구의 절차를 거치거나 사법적 결정에 따르는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물론 당사자들에겐 이의신청과 행정소송 제기 등 불복절차를 허용해야 했다. 그런 조치는 아예 생각지도 않은 채 ‘사실상 비밀리에 또한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서’ 탈북민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결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렸다는 것 자체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번의 탈북민 추방을 통해 대한민국의 사법주권 내지 국가형벌권을 행정부 고위관리들 몇 명이 임의로 포기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명백한 월권행위인 까닭이다. 정부는 매뉴얼에 따랐다고 말하지만 매뉴얼이 헌법과 법률 위에 있는 게 아니다. 범죄사실이 드러났으면 중앙합동조사본부는 이를 검찰에 고발하면 되는 것이었다.

탈북민 강제북송은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한 점의 의혹도 없게끔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 이는 국회가 주도하는 게 적절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힌 다음 관련자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유사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탈북민 귀순 관련 매뉴얼에 위법적 요소가 있는 부분은 삭제하고 보완토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일·외교·안보관리들이 얼마나 헌법과 법률에 무지한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차제에 무능한 관리들을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조치도 아울러 취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 전 외교통상부 인권대사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