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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매경춘추] 기초에서 나오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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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예산 국회가 시작되었다.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513조원으로 역대급이다. 예산 정국이 되면 지방정부들도 분주해진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단비가 될 지역 사업비를 받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국회를 오가야 한다. 예산 확보 전담팀을 꾸려 전방위 정보전을 펼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도 마음이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 정부 지원금을 선사할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쁜 의도로 만들어진 국가 정책은 없겠지만 선한 의도가 정책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정책 의도와 결과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집행 방식이다. 선한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집행 방식은 재정 규모만큼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다양한 국가사업들을 지방정부에 맡겨 시행하게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주는 예산을 국고보조금이라고 한다. 언뜻 지방이 필요로 하는 재원을 국가가 보조하는 예산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부가 지정한 특정 사업에만 쓰라고 '꼬리표'를 달고 내려온다. 그 뒤에 '보조율'이 따라붙는다. 사업비의 일정 비율을 지방정부가 내게 하는 것이다. 음식을 주문한 사람이 배달한 사람더러 돈을 보태라는 격이다.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국고부담금이라 불러야 한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장애인연금 같은 굵직한 국가사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집행된다.

복지 확대로 지방정부가 더 많은 국고보조금을 부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담은 사업들은 뒷전으로 밀린다. '위임'이라는 집행 방식은 더 문제다. 권한과 책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사업 책임자인 중앙정부는 현장을 모르고, 현장 책임자인 지방정부는 권한이 없다. 소위 눈먼 돈, 영혼 없는 공무원이 생겨나는 이유다. 문제는 있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속 터지는 상황도 불합리한 집행 구조 탓일 때가 많다.

재정은 정부의 정책 의지를 반영한다. 나는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정부의 정책 의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분담 비율에 담겨 있다고 말이다. 지방정부에 권한은 주지 않으면서 재정 부담만 넘기는 것은 생색만 내겠다는 행태다.

'슈퍼 예산'에 대한 국회의 꼼꼼한 심사를 주문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사업별 예산 규모만 살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국회는 기초부터 살펴야 한다. 기초정부들이 제대로 일하게 만드는 예산이 곧 경제와 민생에 활력을 불어넣는 진정한 '슈퍼' 예산이기 때문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전국시군구協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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