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사설] ‘잠재적 범법자’ 신세에 처한 기업인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현행 법규 아래서 기업인들은 ‘잠재적 범법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과정에서 빚어지는 온갖 일에 대해 시시콜콜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관련 법령 285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형사처벌 항목이 모두 2657개로 집계됐다고 한다. 20년 전인 1999년(1868개)에 비해 42%나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돼 왔다는 증거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부분의 형사처벌 대상에 사업주가 자동적으로 포함되도록 규정돼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형사처벌 항목의 83%(2205개)가 범죄를 저지른 해당 직원만이 아니라 법인 및 대표이사까지 함께 처벌받게 규정하고 있다. 그중에서 징역형 등 인신구속형의 비율도 89%에 이른다. 기업의 대표이사(CEO)로 등재되는 순간부터 제재 조항에 얽매이게 되는 셈이다. 경영에 몰두하기보다 제재를 피하는 방법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라면 기업활동이 원만히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자체가 무리다.

지난 7월 시행에 들어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비근한 사례다. 회사 업무과정에서 어느 직원이 불이익을 받았을 경우 사업주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돼있으나 정작 가해자에 대해서는 사내 처리만 적용된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 기업에까지 확대되는 주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주52시간 위반이 적발될 경우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진작 경영자들 사이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이유다.

정부는 지금껏 기업규제를 철폐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해 왔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범법자로 몰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인사권에 개입하겠다는 방안까지 등장하고 있다. ‘약속 따로, 시행 따로’ 정책의 전형이다. 이래서는 기업활동이 겉돌면서 경제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