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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주주 울리고 횡령에 악용되는 CB…커지는 개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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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파티게임즈(194510)에 이어 최근 리드(197210)까지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코스닥 상장사가 연이어 횡령사건에 휘말리면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인 상품)과 관련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횡령 혐의에 휘말린 코스닥기업 경영진들은 대부분 메자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빼돌렸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CB의 재조정(리픽싱) 조항이다. CB는 원래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주식으로 바꿀 때 전환 가격을 최대 70%까지 낮출 수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없는 재조정 조항인데, 그 폭이 너무 과하다"면서 "금융당국에 제도 개선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했다. CB 전환가와 관련한 부분은 자본시장법 아래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에 담겨 있다.

조선비즈


증권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CB는 대부분 만기 3년에 이자율 연 1~2%의 조건으로 발행된다. 지난해 코스닥벤처펀드에 3조원이 몰렸을 당시에는 비교적 우량한 코스닥기업들은 이자율 0%의 조건에도 발행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낮은 이율로 발행될 수 있는 이유는 전환가격 재조정 조항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투자자들은 어차피 싼 값에 주식으로 전환해 팔면 되니 낮은 이자를 받아도 되는 것이다. 반대로 발행기업 입장에서는 이자 지급 부담이 없고 당장은 주식으로 풀리지 않으니 기존 주주들의 저항이 덜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 때문에 1조~2조원이었던 발행 규모는 2012년 메자닌 전문 자산운용사들이 속속 생겨난 이후로 고속 성장하기 시작해 지난해 5조3398억원까지 늘었다.

한 전문가는 "리픽싱 조항을 없애거나 30% 정도로 낮춘다면, 투자자들은 그만큼 만기를 짧게 가져가려고 하거나 높은 이자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 경영진의 횡령 가능성이 있는 한계기업은 더 이상 CB를 발행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도 "통상 만기가 3년이니 코스닥꾼들이 횡령을 저지르고 도망칠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서 "리픽싱 조건을 높이고, 만기도 짧게 가져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메자닌 발행 남발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현상)'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재조정 때문에 CB가 얼마나 주식으로 전환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면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는 상당한 불확실성 요인으로, 코스닥시장을 기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시장에서 자정작용처럼 CB 발행 조건이 깐깐해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로 투자자들이 메자닌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5월만 해도 6000억원이었던 CB 발행금액은 지난달 3670억원까지 감소했다. 적자를 보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메자닌이 대부분 사모 전문 운용사 등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되다 보니 이것이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1년 개정된 상법에는 기존 주주의 신주 우선 배정의 권리가 명시돼 있다. 사모 발행은 회사가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때만 회사 정관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럼에도 편의성 때문에 사모 발행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비록 이번에는 문제가 됐지만, 최근 수년간 목돈을 넣을 수 있는 자산가들과 전문 운용사들이 메자닌을 통해 적지 않은 이익을 챙겨왔다"면서 "기존 주주들이 가져가야 할 혜택을 빼앗아간 셈"이라고 했다.

안재만 기자(hoonp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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