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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인-잇] 성차별은 과거사? '숫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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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 영화평론가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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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취직에 고배를 맛보았다. 면접 자리에 가면 아무렇지 않게 남편의 직업과 아이들의 나이를 물었다. 자리를 제안했다가 남편 직업을 묻더니 지방 근무는 어렵겠다며 제안을 취소하기도 했다. 나의 근무 가능성 여부가 내가 아닌 내 가족관계에 의해 판단되었다. 내가 서류, 1차 면접, 2차 면접까지 거치며 어렵게 떨어졌던 자리를, 남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구두 추천을 거친 남성이 특채로 얻는 것을 보기도 했다.

취업에 실패했을 때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찍히면 안 되었고, 개인의 능력치는 기준에 따라 너무 달라지기 때문에 부당함을 증명하기 어려울 거라고 겁을 먹었다. 취직하고 싶었지만 그 사회는 너무 작았고 나는 겁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대한민국의 특정한 직업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를 보고 있으니 그때 생각이 났다. 수많은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과 여성 감독·작가들의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국의 연예산업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를 감정적으로, 수치적으로, 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영화계를 비롯한 예술계는 성과가 그 가치를 말해주는, 그러니까 능력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 '공정함'이란 정확하게 측정되기 어렵다. 실력이나 능력에 따르는 것이 공정함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보일 기회를 얻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에는 출발선에 서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우먼 인 할리우드>는 스크린 위에 보이는 여성들이 그 숫자나 역할에 있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출발한다. 1990년대 페미니즘 영화의 대중적 논의를 불러왔던 <델마와 루이스>에서 연약한 울보 델마 역을 맡았던 지나 데이비스는 딸을 키우면서 아동 캐릭터조차 얼마나 남성 편향적인지를 새삼 깨닫고 경악한다. 지나 데이비스는 할리우드에 미팅이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그건 옛날 얘기일 뿐 문제는 이제 다 수정되었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지나 데이비스는 스스로 연구기관을 만들고 조사한 지 2년 만에 1990~2005년까지 상위 100위에 랭크된 아동물에서 대사가 있는 인물의 72%, 내레이터의 3/4 이상이 남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연구결과는 다양한 국가와 영역으로 확장되어 비슷한 결과를 수치적으로 증명하는 수많은 연구들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은 이 지점을 강조한다. "더 이상 아니다. 달라졌다." 하지만 숫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실상은 거의 늘 제자리라는 것.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진 작품의 성공은 늘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유행은 될지언정 시장의 영구적인 판도를 바꾸지 못했다. 일례로, 1990년대에 스크린에 등장했던 페미니즘·여전사 열풍은 그 이후 여성 콘텐츠를 생산할 인력 고용 증대로 연결되지 못했다.

화면 위에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적은 것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 인력이 적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편한 영역을 다루기 마련이고, 창작자의 특성은 작품에 반영된다. 미국감독협회의 여성 회원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지만 배타적인 업계의 구조가 몇 십 년째 여성 감독을 희귀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제작자들이 감독을 고용하려 할 때 에이전트들은 단가가 높은 백인 남성 감독들을 추천한다. 높은 단가를 가진 감독이 더 높은 소개 수수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백인 남성 감독들은 더 큰 예산을 가진 영화에 배치되고, 더 많은 홍보비와 더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한다. 당연히 더 좋은 흥행성적을 얻는다. 이것이 다시 백인 남성들을 고용하는 수치적인 증거가 된다. 이런 폐쇄적인 구조가 다른 성별과 인종의 진입을 막는다.

FX 방송사는 매우 흥미로운 예를 보여준다. 2010~2014년 사이 방송국의 콘텐츠와 감독을 전수 조사한 결과, FX는 기회균등지수에서 최악의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2012~13년 FX의 감독 중 89%가 백인 남성이었다. 기회균등을 옹호하며 스스로를 친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던 FX의 대표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회의를 열어 이 같은 고용상태를 당장 시정하라고 지시한다. 2016년 고용 다양성을 56%까지 끌어올린 FX에서는 다른 인종과 성별이 주인공이 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8년 FX는 TV 연예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에미상의 5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한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그건 너희 어머니 세대의 일이며 그저 너의 피해의식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그리고 나의 불편함은 어떤 통계적 기반이 있는지, 어떤 법적 지원을 더 요구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누군가와 기회를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누군가와 함께 서고, 혼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우먼 인 할리우드> 이미지)

#인-잇 #인잇 #김지미 #삶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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