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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소규모 지진 때 지열발전 멈췄다면…포항지진 확률 1%에 불과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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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르지 샤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 [사진 제공 = 미국 카네기멜런대]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의 공극 유체 주입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보다 앞서 소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유체 주입을 멈췄다면 포항지진의 발생 확률은 1%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포항 지열발전소 실증 사업 당시 좀 더 면밀한 안전성 검토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르지 샤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대한지질학회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 주최로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19 포항지진 2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포항지진을 확률적으로 분석한 결과, 2016년 12월 23일 규모 2.3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포항 지열발전소의 유체 주입을 멈췄으면 포항지진의 발생 확률은 1%로 낮출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샤피로 교수는 "포항지진이 발생하기 불과 7개월 전인 2017년 4월 15일 규모 3.3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라도 유체 주입을 멈췄다면 포항지진 발생 확률은 3%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3월 정부조사연구단이 결론내린 바와 같이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의 공극 유체 주입에 의해 촉발됐다'는 것을 전제로 지진의 발생 시점과 에너지 등을 고려해 확률적으로 모델링한 결과다. '촉발 지진'이라 함은 자연적으로 쌓인 응력(應力·스트레스)이 임계 응력 한계에 다다른 상태의 단층에 유체 주입과 같은 인위적인 자극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함으로써 촉발된 지진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지진이라는 점에서 촉발 지진은 인간 활동이 직접적으로 지진을 발생시킨 '유발 지진'과는 구별된다.

샤피로 교수는 "지진 발생 위험도와 빈도를 예측할 수 있는 '지진지수'와 'b값'을 고려했을 때 포항지진 발생 지역은 충분히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포항 지열발전소의 실증 연구 과정에서 실시간 지진 모니터링과 3차원 지진 분석 등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11.15 포항지진과 같은 큰 지진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광희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도 "포항 지열발전소의 부지선정과 지열정 굴착, 지열 저류층 형성 등 모든 단계에서 10차례 이상의 위험 신호가 있었으나 모두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지열발전소의 유체 주입이 포항지진의 발생 시기를 얼마나 앞당겼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지열발전소에서 유체를 주입하기 이전에 이미 포항 지역의 지층에 상당한 응력이 쌓여 있었던 원인은 2011년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과 2016년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지진 때문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연구진이 포항지진 발생 지역의 3차원 응력 변화 등을 분석해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경주 지역에 쌓인 응력이 경주지진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에서 포항 쪽에 응력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향후 포항 지역의 지진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이용한 추가 분석과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시히코 히마모토 일본 교토대 교수는 "포항지진은 유체 주입으로 인한 지진 발생 과정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진인 만큼 모든 관련 자료들이 즉시 공개돼 하며 이를 활용한 국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여진 발생횟수는 시간이 지나며 감소하고 있어 향후 지진 발생 위험도는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열발전소는 발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지하 암반에 물을 주입해 인공적인 틈을 만드는 '수리(水理) 자극'을 한다.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6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5차례에 걸쳐 총 1만2800㎥의 물을 주입했다. 이 정도의 물 주입은 일반적으로는 규모 3.5 이하 유발지진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항 지역의 경우 이미 단층에 응력이 지진 발생에 임박한 수준까지 응력이 쌓여 있어 작은 자극으로도 규모 5.4 수준의 큰 지진 발생으로 이어졌고 3000억원에 달하는 직·간접적 피해를 입혔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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