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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책과 삶]서로의 ‘문’ 열었지만…파국 맞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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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김보국 옮김프

시케의숲 | 372쪽 | 1만5000원

경향신문

서보 머그더의 <도어>는 20세 차이가 나는 작가와 가사도우미의 20년에 걸친 관계를 다룬다. 헝가리의 비극적 현대사와 맞물린 두 사람의 서사는 긴장감이 넘치고 강렬하다. 머그더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에메렌츠도 집에서 버려진 고양이를 키웠다. 프시케의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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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낯선 나라 헝가리에서 쓰인 소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 강렬한 캐릭터, 흡입력 있는 이야기, 심장을 쥐고 흔드는 감정의 격동 같은 요소들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가진 이야기는 불멸한다.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1917~2007)의 소설 <도어>에 대해 말하자면, 이 모든 요소를 지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에메렌츠가 있다.

낡은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사람, 세상의 교양이나 합리적 기준을 벗어나지만 자신만의 원칙을 타인에게 관철해내고야 마는 사람, 세월을 초월한 초인적인 면모를 지닌 존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치의 삶을 겪어낸 에메렌츠가 ‘다 한’ 소설이다.

서보 머그더는 헝가리의 대표적인 작가다.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지만, 그녀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1987년 쓰인 <도어>였다. 2003년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2005년 렌 릭스의 <도어> 영문 번역판은 영미권에 머그더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15년 미국에 출간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뉴욕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설은 작가인 주인공 ‘나’와 그녀의 집안일을 해주는 가사도우미 에메렌츠 사이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친 이야기다. 우정이라고, 애정이라고, 무엇이라고 명확히 이름 붙이기 어려워 보이는 관계는 범박하게 ‘사랑’이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업작가로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해 집안일을 해줄 가정부를 구한다. 지인으로부터 에메렌츠를 소개받지만, 어쩐지 주도권은 고용주가 아닌 고용인 에메렌츠가 쥐고 있다. 에메렌츠는 ‘나’와 남편의 평판과 집안 상태를 평가해 일을 할지 말지를 정한다. “노동에서 기쁨을 느꼈고, 노동을 즐겼으며,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 에메렌츠는 “업무 시간 이후에는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이건 급료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고 당당히 외치는 사람이다. 노동 시간도, 급료도 자신이 정한다. 하지만 완벽한 일처리와 헌신성이 그녀의 ‘막무가내’를 가능하게 했다.

에메렌츠는 철저히 노동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다. 반지성주의적이며 냉소적인 그녀는 오로지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사람을 나눈다. 그녀에겐 히틀러도, 왕조도, 공산당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다. 의사도, 교회도 신뢰하지 않는다. 몸으로 하는 노동의 진실함만을 신뢰한다.

경향신문

냉담하기만 하던 에메렌츠와 ‘나’의 관계 변화는 불현듯 찾아온다. ‘나’의 남편이 큰 수술을 받고 생사를 오가던 밤, 에메렌츠는 갑자기 간격을 좁히며 훅 다가온다. 녹초가 된 그녀의 입에 억지로 뜨거운 음료를 삼키게 하는데, 그 폭력적 침범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료’로 다가온다. 에메렌츠는 뜨거운 음료만큼이나 충격적인 그녀의 과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두 동생을 잃고, 눈앞에서 어머니가 우물에 몸을 던지고, 어려서부터 남의 집 일을 해야 했던 에메렌츠의 삶은 ‘아비규환’을 넘어선다. 그녀의 반지성적이고 냉소적이며 배타적인 태도는 생존을 위한 자동반응으로 삶 속에서 켜켜이 굳어져온 것이다. 에메렌츠는 자신만의 ‘1인 공화국’을 만들어왔으며, ‘나’는 이제 막 그곳으로 초대됐다.

‘밀당의 고수’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에메렌츠는 냉담과 무시, 무조건적 헌신과 애정을 오가며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때로는 신화 속 인물처럼, 마거릿 대처에 비견되는 강인한 모습으로, 하지만 한없이 슬프고 상처입은 모습을 지닌 채로. 오랜 세월에 걸쳐 둘은 서로 좋아하고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소설은 에메렌츠라는 세상의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에 침범당하고 빠져들어가는 ‘나’의 이야기기도 하다. 정반대 쪽에 위치한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간다. 지식인이자 작가인 주인공은 에메렌츠로부터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에메렌츠가 오히려 예수가 말한 사랑과 헌신을 자연적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자신의 위선과 기만을 깨닫기도 한다.

두 사람이 간극과 한계를 뛰어넘은 우정과 애정을 지켜나갔다면 이 소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로 시작되는 소설 도입부는 파국을 예고한다. 에메렌츠의 괴팍함과 비밀스러움의 원천은 단 한번도 타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문’이다. 에메렌츠는 ‘나’를 유일하게 믿고 문을 열어주지만, 바로 ‘나’에 의해 에메렌츠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비밀은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망가진다. ‘나’의 죄의식으로 이 소설은 쓰였다.

소설은 일종의 수미상관 구조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20년 동안 지속된 이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우정이라 해야 할지 애정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관계를 다시 한번 찬찬히, 쓸쓸한 마음으로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사랑이고, 믿음이고, 배반인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관계를 명쾌하게 진단하는 심리서와 조언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설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도어>는 머그더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책이다. 머그더는 헝가리 정치사의 부침에 따라 작품 발표가 금지됐다가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에야 전업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에메렌츠와 같이 머그더 옆에는 충실한 가사도우미 쇠케 율리어가 있었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소설을 통해 에메렌츠라는 인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에메렌츠, 강인하고 초인적이며 동시에 한없이 연약하고 안쓰러운 인물은 당신의 마음에도 한 조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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