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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세상사는 이야기] 어떤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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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런 때 다시 독일에 와 있으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우연히 현장에 있었기에, 매일 그곳을 헤매면서 본 것들을 허겁지겁 기록하고 전하던 기억이 여간 새롭지 않다. 그때는, 무너지는 장벽을 똑똑히 보고 잘 전하는 것이 우리의 통일을 앞당기는 일인 것만 같아 발이 부르트도록 현장을 쏘다니고 손가락이 굳도록 글을 썼었다.

그 후로 30년, 헤아릴 수도 없이, 여권 네 개가 출입국 확인 도장으로 찰 만큼 독일에 왔고 이번에 역시 늘 그렇듯 강연들 때문에 왔지만, 그 첫째 이유가 유별나다. 옛 제자 하나가 공부 자리를 차렸다. 독일 통일, 한국 분단, 글로벌해진 세계에 쳐진 보이지 않는 장벽들에 대한 이야기를, 장벽 붕괴 기념일까지 장장 나흘, 집중해서 했다. 밥 먹을 틈조차 별로 없어 회의실 바깥에는 틈틈이 허기를 채우라고 빵과 음료가 늘 놓여 있었다.

서막이 된 단상토론은 유서 깊은 옛 성에서 열렸는데, 단상에 앉은 면면이 이미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미국에서 자리 잡은 이민자 문학 전공의 한국인 3세 미국 대학 교수, 독일인 독일문학 교수, 독일에서 자란 한국인 2세 역사학 교수, 먼 한국에서 독일 분단과 통일을 유난한 관심으로 지켜본 나, 중국의 비즈니스스쿨에서 글로벌 경제를 다루는 영국인 교수였다. 다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직접 체험했던 사람들이라 공감도 컸고 할 말도 많았다. 다음 날들에서는 독일문학에 반영된 독일 통일을 독일 교수와 오스트리아 교수가 문학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그런 독일문학 작품들이 분단 한국에서 번역된 연유를 한국 교수가 얘기하고, 분단이 다루어진 한국 작품(최인훈의 금오신화에서 김시습까지)에 대해서는 다시 독일 학자가 치밀한 분석을 더하였고, 점점 지역이나 장르가 넓혀졌다. 인도의 지방연구소에 앉아 놀랍도록 정확하게 진단하는 한국 분단, 인종 문제를 폭발시킨 무리하게 끊긴 스리랑카의 국경 문제, 인구의 16%를 넘는 2억 인도 불가촉천민들의 현황을 당사자들이 얘기하고,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쳐진 장벽은 그걸 보고 사는 미국인 교수가 증언하고, 피로 그린 저항 작품들 또 예전에 유대인들에 대해 그어졌던 편견의 장벽들은 유대계 미국인 교수가 얘기했다. 그 모든 건 세상의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들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자리였다. 나흘간 길게 논의된 것이 9일 기념일에 독일 대통령의 한마디로 요약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우리는 많은 내적 장벽을 세웠습니다. 그걸 허물 사람도 우리입니다."

뾰족한 즉방이야 있으랴마는, 이렇듯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 그 많은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길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들 쉬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도 이야기를 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여전히 분단국일뿐더러 사회의 내분, 내홍은 더욱 심해진 곳에서 사는 나야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좋은 연구가들, 젊은이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것 한 가지가 남았다. 사진 한 장이다.

학회 주최자는 예전에 내가 뮌헨대학에서 독일 교수와 함께 분단문학 세미나를 했을 때 수업을 들었던 독일 학생인데 그 후 서울 나의 학교까지 따라와 최인훈의 '광장'으로 멋진 석사 논문을 써 두 대학의 학위를 받았고,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받고 이제 제 나라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과에서 일하고 있다(한국학의 한 코너가 덕분에 앞으로 탄탄해질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선생을 찾아 땅끝까지도 달려갈 줄 알았던 독일 소녀 비르기트가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세 대륙, 네 나라에 있는 스승 넷을 모두 모으고, 많은 전문가를 더하고, 세계 젊은이들을 모아 이런 야무진 공부 자리를 만든 것이다. 곱고 똑똑한 비르기트와 네 명의 선생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녀의 말로 '학문의 가족사진'. 인생에서 쉽사리 찍히기 어려운 것이라 자꾸 보게 되고, 보고 있노라면 많이 기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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