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수능시험지 100톤을 보지도 않고 버려… 선택 안 한 과목까지 나눠주는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낭비되는 수능 시험지

조선일보

지난 11일 오전 세종시에서 한 인쇄소 직원들이 수능 문제지와 답안지를 옮기고 있다. 시험지 중 상당수는 쓰이지 않는다. / 세종=신현종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2020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탐구영역 시간. 모든 과목 시험지가 담긴 '○○탐구영역' 종이봉투가 수험생에게 전달된다. 자신이 선택한 과목 시험지 2~4장만을 꺼내고 남은 시험지는 책상 밑 서랍에 넣는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도 마찬가지. 서랍 속 시험지들은 모든 영역이 마무리되고 나서 감독관이 걷어 각 시·도 교육청에 제출한다. 각 교육청은 문제 제기를 대비해 학생들이 사용한 시험지와 함께 1년간 보관하고, 다음 연도 수능 때 폐지 처리한다.

수능 때 사용되지 않는 시험지가 너무 많다. 한 수험생이 받는 시험지는 4절지로 17~21장. 과목은 최대 두 개까지 선택할 수 있어, 많게는 4장까지 수험생이 사용한다. 따라서 쓰이지 않는 시험지는 최소 13장에서 최대 19장이다. 2020년도 수능시험의 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영역 지원자 수를 통해 제공되는 시험지가 얼마나 낭비되는지 산출해 봤다.

먼저 버려지는 시험지 장수를 계산했다. 올해 사회탐구영역, 과학탐구영역, 직업탐구영역 지원자는 각각 28만7737명, 28만2270명, 6415명이다. 순서대로 4절지 19, 17, 21장을 받는다. 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지원자가 선택한 과목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모든 지원자가 한 과목만 선택했을 때 또는 두 과목을 선택한 경우를 가정했다. 제2외국어·한문에서 2장을 제외하고 버려지는 17장까지 포함했을 때, 손이 닿지 않은 시험지는 최소 762만9130장, 최대 962만7390장이다.

다음은 무게로 환산했다. 평가원은 보안상 종이 재질을 공개하지 않지만, 1㎡당 70g인 '중질지'를 사용한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가로 545㎜, 세로 394㎜의 4절 중질지는 한 장당 13g. 이를 사용되지 않는 시험지 장수에 곱하면 최소 99.2t에서 최대 125.2t이다.

종이 1t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30년 이상 된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다. 시험지 인쇄를 위해 1686~2128그루가 쓰였다. 유명 관광지인 남이섬 약 14만평(46만㎡)에 있는 나무가 약 1만1000그루. 단순 양으로 보자면 그중 약 20%가 시험지로 사라진 셈이다. 나무가 간직한 30년 세월은 말할 것도 없다.

종이 1t 생산 과정에서 약 6.3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총 최소 624t에서 최대 789t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는 비행기가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왕복 운행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7t. 낭비되는 시험지를 만들 때 나온 이산화탄소량은 비행기가 제주도와 서울을 91~115번 다녀오며 내뿜는 양과 같았다. 30년 된 나무 한 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약 10㎏. 나무가 있었다면 사라질 이산화탄소도 고스란히 남았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종이 사용량은 2017년 기준 191㎏이다. 655명이 1년간 사용할 종이가 14일 하루에 낭비됐다는 뜻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같은 탐구 영역 과목을 보는 수험생들을 한 고사장에 모으는 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당일 수험생이 밀봉된 시험지 봉투를 여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수능 관계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낭비되는 시험지가 너무 많다"며 "자원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영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