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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달고 고릿한 개성적 우리술 `남한산성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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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쌀과 조청 엿기름으로 맛을 낸 우리 증류주 남한산성소주. /사진=홈페이지 캡처


[술이 술술 인생이 술술-137] 찬바람이 부니 괜히 아주 찬 소주가 마시고 싶다. 입에서는 차갑고 속에서는 뜨거운. 마침 집안 어르신께 대접하고 남은 알코올 도수 40도짜리 증류주 남한산성소주가 냉장고에 있다. 나는 그것을 꺼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코냑 잔에 따른다.

왜 우리 술을 코냑 잔에 따르느냐면, 허세나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향 때문이다. 튤립처럼 생긴 잔이 술의 향을 가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주둥이가 넓어 마실 때 코가 자연스레 잔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입과 코로 동시에 술을 즐길 수 있다.

술병을 기울이니 왈칵 무겁게 술이 낙하한다. 점도가 꽤 높은 게 틀림없다. 잔에서는 구수하다 못해 고릿하고 뭉근하게 단 냄새가 난다. 우리 전통주에서 나는 불 냄새가 한층 짙어진 느낌이다.

잔을 들어 술을 입에 흘려 넣는다. 술맛의 결이 술 냄새와 닮았다. 다만 그 고린 맛이 강도를 더한다. 거슬릴 정도로 도드라진다. 단맛도 세지는데 고린맛과 단맛이 완전히 따로 논다. 삼키자 알코올이 목구멍에서 거세게 날뛴다. 40도라는데, 체감은 그것보다 독하다.

이 술이 경기도 무형문화재라고 했다. 내 입에는 그 맛이 썩 좋지 않다. 글을 어떻게 쓰지. 난감하다. 혹시 온도가 오르면 맛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급히 술잔을 비우고 술병을 서재 술장에 넣는다. 내일 다시 마실 생각이다. 나는 술장에서 안동소주를 꺼내 입을 헹구듯 마신다.

상온에 둔 지 딱 24시간이 지났다. 다시 술을 따르고 조심스럽게 잔에 코를 가져다 댄다. 거부감이 들었던 고릿한 냄새가 좀 덜 나는 것 같다. 조심스레 마신다. 술이 닿은 혀가 아리다. 달다. 전체 술맛을 단맛이 지배할 정도로 달다. 쌀과 조청, 엿기름이 만든 조화일까. 단데 자연스러워 싫지 않다. 노골적이었던 고릿함은 단맛 뒤에 숨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드러난다. 오히려 그 맛이 술에 개성을 더한다.

고도주답게 삼킨 직후 뜨거운 기운이 코를, 식도를 타고 오르내린다. 그냥 뜨겁기만 하지는 않다. 단맛이 묻는 화기다. 이후에도 달콤 고릿한 맛이 입 안에 꽤 오래 남는다. 위장은 오래 뜨끈하다. 40도보다 더 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놈이나, 상온에 24시간 둔 놈이나 같다.

상온에 둔 남한산성은 식은 남한산성처럼 싫지 않다. 아니, 마실수록 맛있기까지 하다. 나 그새 취한 걸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잔을 기울인다. 역시 안 취했다. 분명히 맛있다.

전날 마셨을 때에는 '재구매 의사 없다'고 쓰려 했다. 상온에 둔 남한산성을 마시고 마음이 바뀌었다. 재구매 의사 있다. 혹시 드실 거면 반드시 상온에 두고 드시기를 바란다. 제조사는 숙취가 없다고 했는데, 나는 다음날 좀 고생했다. 375㎖ 한 병에 약 2만원.

이 술은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제14대 선조 때부터 빚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임금께 진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제조사는 라벨에 '물 속에 담은 불'이라고 써놨다. 썩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술 칼럼니스트 취화선 drunkenhwa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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