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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홍콩시위 '가려진 원인' 알리고 싶었어요"… 홍대 사진전 연 홍콩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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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오는 장면을 잘 봐. 불과 지난주에 벌어진 일이야.”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갤러리. 홍콩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향해 실탄을 쏘는 영상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자 홍콩인 메이(51)가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딸 소피아(10)를 돌려세웠다. 한국에 살고 있지만 매일 유튜브로 홍콩 시위 소식을 찾아본다는 그는 “딸에게 홍콩의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사진전을 찾았다고 했다. 시위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어머니의 설명에 딸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사진들을 바라봤다.

경향신문

한국에서 공부하는 홍콩 유학생들 주최로 17일 서울 서교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시위 사진전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온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주최측은 홍콩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인터넷 매체, 대학 신문, 방송캡처 등의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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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 반대시위를 알리기 위한 사진전이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위안에서 열렸다. 이 사진전은 ‘프리덤홍콩’ 한국지부 회원 5명이 3주간 준비했다. 홍콩 대학생들이 주축인 프리덤홍콩은 지난 8월 3시간만에 1400만 홍콩달러(약 22억원)을 모금하며 전세계 13개국 18개 매체에 광고를 게재해 한국에도 알려졌다.

주최 측은 “그동안은 주로 신문광고를 통해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왔지만 최근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홍콩 소식을 전하는 기사도 바로바로 번역되지 않는다”며 “지난 6월부터 6개월 간이나 시위가 지속되는 이유를 한국에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전에는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라는 제목이 붙었다. 전인후과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주최 측은 “특정 장면을 찍은 사진만 보고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송환법의 부조리함과 홍콩경찰의 무력진압이라는 ‘가려진 원인’이 있다”고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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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부하는 홍콩 유학생들 주최로 17일 서울 서교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시위 사진전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온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주최측은 홍콩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인터넷 매체, 대학 신문, 방송캡처 등의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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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는 약 200여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홍콩 대학생들이 소셜미디어와 홍콩언론, 외신 등에서 직접 모은 사진들이다. 6월9월 첫 송환법 반대 시위, 7월1일 입법회 점거, 8월31일 지하철 831사건, 9월26일 정부관원과 시민들의 첫 대화, 10월1일 중학생 시위자를 향한 경찰의 실탄 사격 등 시위의 주요 분기점들이 월별로 정리됐다.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피를 흘리는 시위대 사진도 별도의 편집 없이 그대로 실렸다. 각각의 사진 옆에는 홍콩인들이 서툰 한국어로 직접 작성한 설명이 빼곡했다.

한국 언론이나 영미권 외신이 전하지 않는 ‘작은 에피소드’도 전했다. 한 시위자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포스터 옆에 스테인리스 그릇을 놓고 “이것은 원래 음식을 담는 스테인리스 그릇인데 지금은 왜 최루탄을 꺼지는(‘끄는’의 오타) 도구가 돼었을까”라는 문구를 남겼다. 홍콩 시위대는 바닷가에서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15세 소녀 천옌린(陳彦霖)의 죽음 등 연이은 의문사의 배후로 홍콩 경찰과 중국 당국을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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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부하는 홍콩 유학생들 주최로 17일 서울 서교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시위 사진전 ‘신문에 보이지 못하는 전인후과(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온다)’에서 한 관람객이 현수막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다. 주최측은 홍콩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인터넷 매체, 대학 신문, 방송캡처 등의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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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유리씨(23)는 “6월부터 홍콩 시위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정리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며 “(사진전에는)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가 돼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툰 한국어 설명을 보니 준비하는데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관람객 일부는 사진전을 보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오전부터 비가 내렸지만 전시회장을 찾는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주최 측은 3일동안 약 1000여명이 전시회를 찾은 것으로 추산했다. 관람객 비중은 한국인이 60%로 가장 높았고, 홍콩인이 30%, 그 밖에 외국인이 10% 정도다. 시위 준비에 참여한 홍콩인 ㄱ씨(22)는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객으로 한 한국인 남성을 꼽았다.

“한 한국인 남성분이 저희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저도 6월부터 홍콩 시위 소식을 라이브 영상으로 보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제 친구들은 홍콩에서 열심히 싸우는데 저는 안전한 곳에서 있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생각 때문에요.”

최근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를 두고 한국 대학생과 중국 유학생 사이의 갈등이 격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중국인 친구들들에게도 홍콩 시위대가 폭도가 아니라는 점을 잘 설명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면서도 “모든 중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전시회를 찾은 한 중국인 관람객으로부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들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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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쪽 벽면에 영화 <알라딘>의 OST ‘스피치리스’의 가사 한 소절이 중국어로 적혀있다. “나는 힘없고 나의 말은 보잘것 없지만 절대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는 뜻이다. 심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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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싸워야하는건지 모르겠어요. 홍콩 상황이 변할 때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름대로 준비해보지만, 홍콩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ㄱ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장 한 쪽 벽면에 적힌 영화 <알라딘>의 OST ‘스피치리스(Speechless)’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나는 힘없고 나의 말은 보잘것 없지만 절대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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