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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리뷰]‘아이리시맨’, ‘영화의 본질’ 향수 그리며 소환해본 갱스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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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의 거장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아이리시맨>은 미국의 유명한 미제사건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로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로버트 드니로를 포함해 조 페시, 알 파치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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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스코세이지 감독의 ‘결정판’

창작자 개성 지향 내세우며 선봬

넷플릭스서 전폭 지원 ‘아이러니’


“마블 영화는 ‘영화(Cinema)’라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의 거장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77)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마블을 비롯, 최근 만들어진 많은 영화들이 “즉각적인 소비를 위해 완벽한 공정으로 제조되는 상품” “예술의 본질을 외면하는 무자비한 비즈니스”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테마파크’보다는 창작자 개인의 개성이 담긴 ‘예술’에 가까웠던 옛 시절에 대한 깊은 향수를 드러냈다. “영화란 우리 인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때로는 역설적인 우리의 본성과 서로 상처받고 사랑하고 만나는 일을 다루는 예술이었습니다.”

그에게 옛 시절을 돌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미래’라 불리는 초대형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넷플릭스다. 1억5900만달러(약 1855억5300만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스코세이지의 신작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가 준 “돈과 자유”를 완전히 누렸다. 그는 마치 ‘영화(Cinema)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보이겠다는 듯이, 무려 3시간29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을 고집하며 지난 60여년간 축적해온 자신의 영화적 개성과 역량을 쏟아부었다.

<아이리시맨>은 <좋은 친구들>(1990), <갱스 오브 뉴욕>(2002) 등에서 보여줬던 스코세이지의 주특기 ‘뉴욕 갱스터’ 이야기의 ‘결정판’에 가까운 영화다. 아메리칸드림 너머의 뒷골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미국 이민자의 복잡다단한 생을 ‘갱스터 영화’라는 장르에서 구현해왔던 스코세이지는 <아이리시맨>을 통해 이 작업을 완결 짓겠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에 24년 만에 재회한 그의 ‘페르소나’ 로버트 드 니로를 포함해 그리고 조 페시, 알 파치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배우들이 가세했다. 회고의 문법을 따른 영화가 시간을 거슬러 갈 때마다, 젊어지는 배우의 얼굴을 구현한 첨단 3D 시각효과 ‘디 에이징(De-aging)’까지 한몫을 해낸다.

이쯤 되면 스코세이지가 그리워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영화의 과거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사실 어떤 질문에도 무 자르듯 답변 내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처럼 <아이리시맨>에도 각종 모순이 솟구친다. 영화가 미국의 유명한 미제 사건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다루면서도, 진범을 추적하는 전형적인 장르 문법을 택하지 않는 이유다. 영화는 1940~1950년대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국제트럭운전자노동조합의 수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의 곁에서 전후 미국을 움직인 흑막의 세계를 응시하고 또 여기에 가담하는 청부살인업자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삶을 천천히 비출 뿐이다.

알 파치노 등 노장 배우들도 가세

‘포장’없이 범죄 사건들 생생 묘사


영화는 2차 대전에 참전했다 퇴역한 자신이 어떻게 ‘페인트공(청부살인업자를 뜻하는 은어)’이 됐는지 설명하는 82세 노인 프랭크 시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트럭 운전사 시런은 운반하던 고기를 빼돌리다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자신을 변호하던 변호사의 사촌이자 필라델피아의 ‘큰손’ 마피아인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를 만나면서 지하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듣자 하니 자네가 페인트공이라던데.” 영화 시작 이후 50여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호파는 이 한마디로 시런을 더 큰 세계로 끌어들인다.

생존 본능, 인정 욕구, 권력욕, 사치욕, 형제애, 아집, 사랑, 질투…. 영화 속 인물들은 치졸해보일 만큼 복잡한 동기들로 뒤엉킨 채 범죄를 이어간다. 여기에는 어떤 ‘포장’도 없다. 물론 상영 시간 내내 시대적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근사한 음악들이 시종 흐르지만, 범죄나 범죄자의 근사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당선과 암살에 개입할 만큼 ‘대단한’ 마피아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늙고 죽는다는 것을 영화는 냉정하게 그려낸다. “누가 죽였지?” 지난한 세월을 거쳐 노인이 된 시런은 누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같이 묻는다. FBI 요원은 황당하다는 듯 답한다. “암이오.”

“이 영화는 신의, 사랑, 믿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배신에 관한 것입니다.” 스코세이지의 설명이다. 거장의 솜씨답게 완벽한 구성과 편집으로 구현된 영상 위로, 사랑과 배신이 하나가 되는 기묘한 삶의 군더더기가 차오른다. <아이리시맨>은 그런 영화다. 하나도 폼 나지 않는 갱스터의 죽음과 야비한 계산에 불과한 갱스터의 비장함을 다 보고난 뒤에도 영화 속 인물 그 누구도 쉽게 미워지지 않는다. 워낙에 그렇고 그런, 우리 삶의 모양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코세이지의 ‘영화’ <아이리시맨>은 오는 20일 일부 극장에서만 개봉하며 27일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비록 입이 떡 벌어지는 스펙터클은 없지만, ‘영화’가 쌓아온 근사한 역사를 체험하고 싶다면 극장을 찾아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미국 현대사 등 관련 정보를 찾아가며 보고 싶거나, 긴 상영 시간이 마음에 걸린다면 넷플릭스를 통한 감상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청소년 관람불가.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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