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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설왕설래] 미쉐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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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매년 발간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이다. 미쉐린이 1900년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나눠준 자동차 여행 안내책자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타이어 정보, 도로 법규, 자동차 정비 요령 등이 주된 내용이었고 식당 소개는 부록 수준이었으나 1922년부터 식당 지침서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별의 개수로 식당 등급을 표시하는데 별 셋 식당은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집으로 소개된다. 음식, 서비스, 청결상태 등으로 별점을 매기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세한 기준은 비밀이다. 별 셋 식당이 몇 개인가는 그 나라 음식 수준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별 셋 식당의 요리사는 요식업계의 ‘노벨상’을 받은 것과 같다.

최고의 영예를 얻었으니 마냥 행복할까. 요리사들은 미쉐린 별점 유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고 말한다. 연 2∼3회 찾아오는 암행 평가단을 의식해야 하는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어서 미쉐린 별점 반납 사례도 잇따른다. 프랑스 식당 ‘르쉬케’의 요리사는 “미쉐린 평가단보다 손님을 만족시키는 캐주얼한(편안한) 요리를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미쉐린 식당으로 뽑히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손님들이 몰려 서비스는 물론 음식의 질까지 추락하기 십상이다. 별점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쉐린 별점의 저주’다. 2003년 프랑스의 천재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일하던 ‘코트 도르’ 식당이 별 둘로 강등될 거라는 소문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난 14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 이름을 올린 식당 명단이 발표됐다. 올해 별점을 받은 식당은 총 31개로, 지난해보다 5곳이 늘었지만 미쉐린 가이드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주장도 나왔다. 한식 레스토랑 ‘윤가명가’ 대표가 “연간 4만달러(약 5000만원) 이상의 컨설팅 비용 요구를 거절하자 등재가 취소됐다”고 폭로했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측은 “미쉐린 별점을 받은 모든 식당과 금전적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 정도로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미쉐린 가이드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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