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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사설] 그린북서 ‘부진’ 표현 삭제한다고 경제 좋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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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경제성장률 1%대’ 악몽이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경제전문가 22명에게 올해 성장률을 물은 결과 18명이 1%대를 전망했다. 2%대는 3명뿐이다. 성장률이 1%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경제위기가 닥친 1980년, 1998년, 2009년뿐이었다. 10명은 내년에도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경제 악화의 요인으로 미·중 무역갈등, 투자 부진, 정책 부작용을 꼽았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가 곪은 상황에서 대외 악재마저 겹쳐 성장률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경제는 올 들어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월 2.4%에서 이달 2.0%로 떨어뜨린 것만 봐도 얼마나 급격히 추락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약 30% 올리고, 근로시간마저 제한한 결과 기업들이 너나없이 ‘고비용 굴레’를 덮어썼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업 경쟁력은 약화되고, 수출은 지난달까지 11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기업이 투자할 리가 만무하다. 그로 인해 올해 내내 민간 부문에서는 ‘일자리 대란’이 만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투자를 가로막는 암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투자활성화”라고 했다.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개혁, 최저임금 차등화, 감세 등이 고비용 구조를 수술하는 핵심 정책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경제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기획재정부는 15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1월호에서 8개월 만에 ‘부진’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경기가 좋아져서 뺀 게 아니라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인쇄된 그린북에 적힌 ‘반도체 업황 부진’ 표현도 테이프를 붙여 ‘반도체 단가 하락’으로 바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경제 리더십을 보여 달라”며 현 경제상황과 전망을 자세히 설명하라고 지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부진’ 표현을 삭제한다고 경제가 나아지는가. 이런 식이라면 정부의 경기 판단마저 믿을 수 없게 될 판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잘못된 정책부터 수정해야 한다. 잘못에는 눈을 감고, 실정(失政)만 감추려고 한다면 경제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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