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유럽 각국에서 최근 10년간 일자리 수는 꾸준히 늘었으나 질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둘러싼 근로자들의 불만이 치솟으며 새로운 사회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노동시장이 눈에 띄는 양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 때문이라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 유럽 일자리의 14.2%는 임시직으로 파악됐다. 이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4%)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이들 임시직은 연금,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보험의 혜택이 없는 질 낮은 일자리라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WSJ는 "유럽 전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면서도 "이 같은 숫자 뒤에는 유럽을 바꿀 수 있는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 전역에서 실업률이 치솟자 각국이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일자리의 양적 측면과 달리, 질적 측면은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에서 빈곤의 위험에 처한 근로자 비율은 2007년 7.9%에서 지난해 9.2%로 높아졌다.
네덜란드에서는 임시직 근로자 비율이 2009년 16.4%에서 지난해 20.1%까지 높아졌다. 이탈리아 역시 같은 기간 10.8%에서 16.5%로 치솟았다. 유럽 내에서도 노동친화적 국가로 손꼽히는 프랑스 또한 13%에서 16.2%까지 임시직 근로자 비율이 올라갔다. 프랑스에서 1년 전 정부의 유류세 인상계획에 반발하며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가 확산된 데는 이 같이 질 낮은 일자리 시장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30%가까이 치솟았던 스페인의 경우 최근 14.2%로 지표가 개선된 상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계약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스페인의 임시직 비율은 26.5%에 달한다. 4명 중 1명 꼴로 유럽 내에서도 특히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은 각국 정치상황에도 고스란히 표심으로 이어져 극우·극좌 포퓰리즘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을 이어가고 있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9월을 기준으로 한 영국의 고용률은 76.1%로 1971년 이후 최고치다. 하지만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일이 주어지는 계약직, 자영업 성격이 강한 일자리 등 불안정한 형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워릭대학의 티에모 페처 교수는 이를 둘러싼 불만이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했다. 고용불안정성이 높아지며 정부 지원이 줄어든 지역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인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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