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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왜냐면] 산사태 대책 미비가 피해 키운다 / 이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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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수곤 ㅣ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태풍이 잦아지고 있다. 태풍은 보통 연평균 3~5개인데, 올해엔 7개가 한반도를 지나갔다. 또 일본에선 100년 만의 폭우까지 내려 100여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이변에 따른 대비가 필요한 때다.

지난달 초 태풍이 계속될 때, 전국 여러 곳(부산·울진·영덕·삼척)에서 피해가 속출했으며, 특히 산사태로 인해 4명의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필자는 대표적 산사태 피해 지역을 직접 살펴봤다. 이 지역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이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지역이나 행정안전부의 급경사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현존하는 국가 차원의 산사태 예측 시스템이 오히려 피해를 키우고 있는 셈이었다.

지난봄에 50일간 진행된 행정안전부 주관의 ‘국가안전 대진단’에서도, 올해 발생한 주요 산사태 피해 지역은 대부분 빠져 있었다. 왜 산사태 피해 예측이 제대로 안 되는가에 대한 근본 원인을 살펴야 하는데, 산사태는 천재지변으로 간주하고 사후에 피해 복구에만 집중하다 보니 해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는 건 상식이다. 산사태는 산 상부에서 시작될 때는 소규모이지만, 토석류와 산사태로 뽑힌 나무들이 중간부를 거쳐 하부까지 흘러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져 아래쪽에 피해를 키우는 ‘움직이는 재해’의 특성이 있다. 70%가 산지인 국내 지형의 특성상 텃밭, 산책로, 철탑, 주택, 태양광과 풍력 발전단지, 임도, 국도 등을 만들면서 산을 깎거나 매립하고 계곡부를 가로막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각 지역의 지질과 지형 특성에 맞지 않는 시설물을 짓게 되면 산사태를 유발하거나 피해를 키운다. 지질을 건드리고 물길을 막는 경우, 보통은 물만 내려가도록 배수로를 설치하고 산사태로 인한 토석류와 뽑힌 나무들을 걸러내는 강재 스크린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배수로가 막히고 외려 댐 역할을 해서 산사태 피해를 키우게 된다.

현재 국내 법규상으로는 산 상부의 임야는 산림청, 산 중간부의 국도는 국토교통부, 산 하부의 민가나 논밭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관할로 각기 나뉘어 있다. 그런 상태에서 각기 자기 시설물들만 만든다. 또 산 상부부터 하부까지 종합적인 위험성을 살피는 통합관리주체가 없어 많은 위험지역이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국민들은 이런 실상을 모르다가 아무런 방지 대책도 없이 무방비로 피해를 당하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30년간의 현장조사 경험을 토대로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지난 3월 국제전문학술지에 제시한 바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내에서는 자기 관할만 관리하는 경직된 관료주의 체계가 쉽게 바뀌기 어렵고, 각 지자체마다 재난 담당 공무원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각 지역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인식 아래, 지역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산에 새로 조성되는 시설물 현황을 실시간으로 각 지자체에 알려주어 범부처적인 안전 통합시스템이 가동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이에 산 상부부터 하부까지 전체적인 재해 가능성을 검토하고, 만일 산 상부에 시설물이 있어 아래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면 (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시설물을 설치하면 된다. 풍화된 토사는 지표면에서 1~2m 깊이가 대부분이다. 산 하부 주민들이 산사태로 인한 토사에 매몰되지 않도록 약 2m 높이의 철근 보호옹벽 또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짓도록 인허가를 한다면,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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