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을지로 '도무송', 조형미와 공간미로 부활...오묘초(조정현) 작가의 '택시더미아' 개인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오묘초(조정현) 작가가 작품전 ‘택시더미아(TAXIDERMIA)’를 서울 을지로 공구골목의 대안공간인 갤러리카페 n/a에서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모습.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젊은 미술가, 신진 작가로 살아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름한 작업실 구하기도, 작은 작품전 하나 여는 것도 참 어렵다. 그래서 갖가지 아르바이트 등 부업을 한다. 문득 돌아보면 미술작업이 전업이 아니라 오히려 부업이 된 듯 헷갈린다. 부업이 전업이고 전업이 부업이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많은 젊은 작가들은 작업을 전업이라 믿으며 알뜰하게 작품에 매달린다.

신진 작가 오묘초(조정현)도 여느 30대 젊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도 인쇄·공구상가가 밀집한 서울 을지로 뒷골목의 공동으로 쓰는 옥탑방 작업실을 찾는다. “무엇보다 작업을 할 때에야 비로소 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존재하는 이유를 절감”해서다.

경향신문

‘도무송’을 모티브로 한 오묘초(조정현) 작가의 작품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업실을 오가던 조 작가는 몇년 전 인쇄골목 구석구석에 쓰레기로 버려진 묘한 형태의 나무판들을 발견한다. 인쇄골목 사람들은 그 나무판은 “도무송”이라 불렀다. 전단처럼 갖가지 모양의 인쇄물을 찍어내기 위해 그 모양에 맞춰 여러 칼날들을 제작, 한 나무판에 박아 놓은 게 도무송이다. 인쇄물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싼 재료로 후딱 만들어 인쇄물을 재단하고는 버려진다.

그래서 을지로 뒷골목엔 쓰고 버려진 도무송들이 많다. 최근 ‘힙지로’(힙한 을지로)로 불리며 수많은 이들이 오고가지만 물론 도무송은 눈길 한 번 받지 못한다. 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가 없는 사회적 약자·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같은 존재가 도무송이다. 그런데 그 도무송들이 독특한 조형미로 관람객들에게 삶과 세상을 성찰하게 하는 사유적 작품으로 전시장에서 부활했다.

경향신문

오묘초(조정현) 작가의 세라믹, 돌, 나무, 쇠 조각품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 작가의 설치작품전 ‘택시더미아(TAXIDERMIA)’를 통해서다. 을지로 공구골목의 대안공간인 갤러리카페 n/a(을지로4가 근화금속 2~3층)에 마련된 ‘택시더미아’ 전시장에는 도무송을 소재로 하거나 영감을 얻은 설치작품, 세라믹·나무·돌을 재료로 한 조각품 등 20여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조 작가는 도무송에 자신 만의 조형의식을 투영했다. 갖가지 모양의 칼날을 갈아내기도 하고, 칼날이 박힌 자리들을 비우거나 메우기도 했다. 그리곤 쇠 파이프를 다듬어 도무송과 직접 연결하거나 간격을 띄워 프레임화했다. 독립적으로, 때론 어우러진 도무송과 프레임들에는 명·채도가 낮은 푸른색·먹색 등의 색도 입혔다. 벗겨지면 속의 다른 색이 보이게 3번에 걸쳐 다른 색들을 입혔다. 도무송과 프레임이 빚어내는 조형미가 돋보인다. 더욱이 얇은 선의 프레임과 도무송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어떻게 보면 어우러짐이 일어나는 듯하다. 설치작품 특유의 오묘한 공간미를 드러낸다.

경향신문

오묘초(조정현) 작가의 개인전 ‘택시더미아’ 전시장의 일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보다 젊은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과도한 개념화도 절제한 듯하다. 박제(Taxidermy)와 특정 상태를 뜻하는 접미사 ‘-ia’의 합성어로 ‘박제된 이미지만 기억되는 사회’란 의미로 작가가 세운 개념인 ‘택시더미아’, 일본 전위미술가·소설가인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초예술’과 ‘토마손’, 프로이트의 ‘초자아’ 등 여러 개념을 바탕에 둔 작품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조형적 아름다움에서 작가의 내공, 자신감마저 읽혀진다. 특히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벽, 오래된 천장 목재들이 있는 전시공간과 작품의 조화를 통해 전시장마저 작품화됐다. 관람객들에게 사유적, 명상적 공간을 선사하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곳곳에는 조각들도 자리한다. 현대도시의 규격화·획일화에 반기라도 드는 듯 자유분방한 형태·재료의 조각들이 눈길을 잡는다. 구워낸 세라믹과 나무·돌·쇠 조각품들은 도무송, 도시를 지배하는 규격화된 도형을 뛰어넘어 다채로운 변주를 들려준다. 그 도형의 변주가 시각적 풍성함을 안긴다.

조 작가는 ‘밝은 눈’으로 도무송을 만났고, 자신만의 조형의식으로 도무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수십년 이어져온 을지로 인쇄·공구 골목의 역사성, 그곳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인식된다. 작가가 전시장에 호명함으로써 또다른 의미 있는 존재가 됐다. 전시장을 찾은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동시대 미술이 중요시하는 지역과의 커뮤니티, 지나치게 개념적이지 않은 시각적 명료함,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깊은 사유성 등이 주목된다”며 “신진 작가의 내재된 역량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평했다.

경향신문

오묘초(조정현) 작가의 설치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 작가는 “도무송이든 우리의 삶이든 모두 다른 모양과 여러 스토리를 지녔지만 기억되지 못함으로써 의미 없이 사라지거나, 박제처럼 실체와 동떨어진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이 아쉽다”며 “어쩌면 수많은 다른 도무송,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말한 ‘토마손’과 ‘초예술’을 찾아 다니는 게 작가가 아닐까한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전이 두 번째 개인전인 작가는 지난 해 시대여관(서울 창신동)에서 연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 전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항상 바쁘게 집(소라껍데기)을 찾아 돌아다니는 소라게를 모티브로 삼아 소외되고 언급되지 않는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설치작품 전이었다. 작가는 당시 전시와 더불어 전시명을 딴 옴니버스 소설 <언급되지 않을 것들의 흔적>을 펴내기도 했다.

조 작가는 “많은 젊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신진 작가가 작품전을 마련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며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 시대 작가로서 해야 할 작품이 많다. 그래서 즐겁다”고 말한다. ‘오묘초’는 영국 유학 당시 발음을 하지 못하는 교수·동료들의 영어 이름 권유를 받고 이왕이면 한글을 넣고 싶어 지은 ‘영어 이름’이다. 전시는 30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