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마지막 순간에 조건부 현상동결에 합의한 데는 무엇보다 미국의 거센 한일 압박이 주효했을 것이다. 미국은 진작 양국에 추가 보복을 중단하는 합의를 제안한 바 있지만 일본이 거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양국이 찾은 임시 동결 해법은 미국의 제안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한일 간 발표 내용에선 뉘앙스 차이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가 더 크게 양보했든 양측 모두가 일방적 굴복으로는 보이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체면을 살리며 외교의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조치가 조건부 분쟁 중단인 만큼 양국이 갈등 해법을 찾기까지는 여전히 우여곡절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협상이 원만하지 않게 흐른다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와 수출규제 강화 및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공감대를 어렵사리 이뤄낸 만큼 우선 양측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작은 조치나 사소한 언사에도 조심하면서 외교적 협상력을 총동원해 타협 가능한 절충점을 도출해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앞으로 이뤄질 한일 간 수출규제 관련 협의만으로 한일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 갈등 해법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한일 간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이른바 ‘1+1+α(알파)’안, 즉 한국과 일본 기업,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만큼 이 협상안을 토대로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논란이 낳은 논란과 후유증을 해소하는 데도 나서야 한다. 정부가 꺼낸 지소미아 종료 카드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카드를 꺼낸 것 자체가 수많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한일관계를 넘어 한미동맹, 한미일 3각 협력체제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깊은 의구심을 낳은 게 사실이다. 미국은 이번 지소미아 논란을 한미동맹에 대한 이탈 움직임으로까지 받아들일 기세였다. 안보를 협상 카드로 내세워 동맹의 불신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