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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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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아베, 양심 갖고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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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 아무것도 양보 안했다" 日관료 "퍼펙트 게임"에

정의용 "일본 행동에 깊은 유감, 이러면 협상 진전 어렵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양국 간 합의 발표를 전후한 일본의 행동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식의 행동이 반복된다면 한·일 간의 협상 진전에 큰 어려움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한·일 합의 직후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의 완벽한 외교적 승리'라는 자체 평가가 흘러나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 언론 보도도 있었다. 그러자 정 실장은 합의 이틀 만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 실장은 "(이번 합의는)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 외교의 판정승"이라고 했다.

양국이 내달 말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가운데 '22일 합의' 과정과 평가를 놓고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 실장은 "어느 한 쪽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상대방을 계속 자극할 경우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경고성 발언"이라며 "(일본에) 'try me'(우리를 시험해 보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아베 총리가 주변 인사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상당히 강하게 나와서 한국이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거의 우리의 퍼펙트 게임(완승)'이라고 말했다"고 전날 보도했다.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아베 총리 발언 보도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게 사실이라면 지극히 실망스럽다"며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말인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합의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한·일 간 자존심 싸움이 과열되는 모습이지만 양국 정부가 '대화의 판' 자체를 깨지 않을 전망이다. 정 실장도 "(일본 측도) 한·일 간 합의한 내용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다음 달 한·일 정상회담도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정의용 실장은 22일 합의 내용 일부가 일본 언론에 먼저 보도된 것, 일본 정부가 '동시 발표' 시간을 어기고 7~8분 늦게 발표한 것,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의 발표 내용 등을 작심한 듯 문제 삼았다. 정 실장은 "일본의 일련의 행동은 'breach of faith(신의성실 원칙 위반)'"라며 "외교 경로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강력히 항의했고, 일본 외무성이 경산성에서 부풀린 내용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날 밤 요미우리신문은 '외무성의 한 간부는 (한국 측에) 사과한 사실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앞서 이날 일본 언론은 양국 협상 과정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유예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중지하기로 물러서 무역 규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국장급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가 주요 당국자들을 불러 "지소미아와 수출 관리(수출 규제)를 연계하지 마라. 절대 굽혀선 안 된다"고 지시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 실장은 "그런 내용이라면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한국 정부가 일본과 미국의 압박에 굴복했고 일본이 외교적으로 승리했다'는 일본 측 주장 역시 "견강부회이자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자기식으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8월 23일) 우리가 지소미아에 대한 (종료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고 난 다음 일본이 우리 쪽에 접근해 오면서 협상이 시작됐다. 이번 협상은 우리 정부의 '판정승'"이라고 자평(自評)했다.

정 실장은 간담회 말미에 "지소미아 연장과 WTO 제소 정지는 모두 조건부였고 잠정적이라는 부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앞으로의 협상은 모든 것이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일본의 태도에 따라 지소미아 사태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이 조만간 시작될 대화에 앞서 치열한 기 싸움을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한·일 양국 모두 물러설 명분이 필요하니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다"며 "각자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며 국내 정치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22일(현지 시각) 논평을 통해 "지소미아를 갱신(renew)한다는 한국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22일 청와대 발표를 '유예'(suspend)나 '조건부(conditional) 연장'으로 전했던 외신 보도와는 차이가 있었다. 국무부가 지소미아 유지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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