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5일장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완주는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먹거리와 볼거리가 그득한 고장이다. 생강, 곶감, 한우는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지역 농산물을 취급하는 로컬푸드 매장에선 갓 수확한 채소의 싱그러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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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완주.
전주 못지않게 볼거리 먹거리가 많다.
여물 먹고 자란 화식우를 구하러 다녔던 곳…
전북 완주군은 전주시를 포근하게 감싸는 모양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빛날 때 주변의 별들은 밝은 달빛에 가려 찾기 힘들다. 전주 옆에 있는 완주도 보름달 옆 별들처럼 애써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완주는 전주 못지않게 먹거리, 볼거리가 많은데도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전주군의 행정구역이 지금의 완주군으로 변경됐다. 그러면서 3개 읍, 10개 면이 전주를 빙 둘러싸는 현재 모양새가 됐다.
필자는 2003년 완주에 맛있는 소고기를 찾으러 처음 가봤다. 전국에 많은 한우 산지가 있지만 굳이 완주까지 찾아간 이유는 화식우 때문이었다. 화식우는 말 그대로 여물 끓여 먹인 소다. 다른 한우와 달리 구수한 맛이 있었다. 화식우와의 인연 때문에 오래전부터 출장 다니던 완주군 고산면을 이번에는 오일장과 로컬푸드 매장 때문에 다녀왔다.
■ 갓 수확한 채소의 싱그러움
이번엔 완주 고산면 오일장을 찾았다.
4·9장인 ‘고산장’은 터미널 옆 옹기종기 좌판이 전부다
비슷하지만 다른 재래종과 개량종 ‘봉동 생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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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로가 좋아지고 대도시 옆에 위치할 경우 오일장은 대부분 명맥만 유지한다. 고산장도 그랬다. 몇몇 판매자들만 버스터미널 사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도였다. 몇몇만 있다고 하더라도 제철 분위기와 지역색은 좌판에 놓인 농산물에서 풍겼다. 완주의 봉동은 생강으로 유명한 곳이다. 생강의 최초 재배지이기도 하고 한동안은 전국 최대 생산지이기도 했다. 지금은 서산, 태안, 안동 등지에 생산량에서 밀리지만 품질만큼은 최초 재배지로서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좌판의 생강을 찬찬히 살폈다. 튼실한 모양새가 대부분이다. 따로 찾는 생강은 크기는 작지만 매운 향이 진한 재래종이었다. 여러 판매자 중에서 한 사람만 재래종을 팔고 있었다. 음식에 쓰기에는 큼직큼직한 개량종이 좋다. 중국에서 수입한 생강은 재래종보다 몇 배 크다. 생강차를 만들 생각이었기에 재래종으로 샀다. 완주는 생강도 괜찮지만 주변에 대둔산, 모악산을 끼고 있기에 맛있는 대추도 많이 난다. 생강차 담글 때 같이 넣을 요량으로 마른 대추도 샀다.
‘봉동 생강’을 만났다, 작지만 향은 더 말해 무엇하랴…
장날을 놓쳤다면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을 들러보자, 다양함에 놀랄 것이다
완주의 오일장은 다른 장터처럼 기운이 빠진 상태지만 대신 로컬푸드 매장은 융성하다. 전국에 로컬푸드 매장 열풍을 일으킨 곳이 바로 완주군 용진농협이다. 완주군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은 2012년 문을 열었다. 최근 전주 시내에 2호점을 열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다. 다른 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들과 달리 상품도 다양하거니와 품질 또한 좋았다. 오랜만에 맛본 바람떡은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팥소가 맛있었다. 우리밀이나 쌀로 만든 빵의 다양한 종류도 매장을 찾는 손님이 많다는 증거다. 잘 안되는 매장의 경우 유통기한이 짧은 일일 배송 식품은 재고 부담 때문에 취급을 꺼린다. 용진농협처럼 장사가 잘되는 곳일수록 일일 배송 식품이 다양하다.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팥소의 바람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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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는 수확 시점이 가장 맛있다. 수확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포도당을 호흡 작용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에 단맛이 점차 줄어든다. 로컬푸드 매장의 장점은 바로 싱싱하고 맛있는 채소를 직거래한다는 것이다. 오전에 수확한 것을 매장에 바로 전시·판매하기에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슈퍼마켓의 채소는 수확, 경매, 중도매인, 소매의 단계를 거치기에 로컬푸드 매장의 싱싱함을 이길 수가 없다. 게다가 로컬푸드 매장은 가격까지 저렴하다. 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 다양한 가공식품도 있다. 완주군의 특산물인 생강으로 만든 차나 농축액, 과자 등이 있다. 최근 개장한 용진농협 2호점에는 김제와 정읍 등 인근 지역에서 나는 농축수산물로 반찬과 차 등을 만드는 공간인 ‘연미향’이 있어 구경 삼아 가기에도 좋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은 1·2호점 모두 전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차를 가져갔다면 잠시 들러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을 만나보자.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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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말린 곶감은 검다
검은빛이 도는 ‘동상 곶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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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은 건조 정도에 따라 건시와 반건시로 나뉜다. 반건시는 말 그대로 반 정도만 말린 곶감으로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이다. 반면에 건시는 완전히 말린 것으로 뒷골을 울리는 쨍한 단맛과 쫄깃한 맛이 좋다. 건시가 진짜 곶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로 다른 맛의 곶감일 뿐 좋고 나쁘고를 따지거나, 진짜니 가짜니 다툴 필요는 없다. 곶감으로 유명한 동네가 전국에 몇 군데 있다. 대부분 만들기 편한 반건시를 주로 생산한다. 완주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곶감 산지다. 만경강 상류인 대아호를 품고 있는 동상면은 건시 중에서도 겉이 검은빛이 나는 곶감을 생산한다. 곶감을 만드는 감은 크기가 작고 씨가 거의 없는 고종시다. 동상뿐만 아니라 인접한 고산, 화산, 경천을 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곶감 말리는 시설이 있을 정도로 곶감을 많이 생산한다. 감을 건조기에 넣고 말리면 며칠이면 곶감이 된다. 색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밝고 붉은색이 난다. 바람과 태양으로 말리는 자연건조는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리고 색도 검다. 동상 곶감을 처음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검은빛 때문에 놀란다. 맛보고 나서는 더 놀란다. 상상 이상으로 맛있기 때문이다. 동상 곶감은 감이 약간 떫을 때인 11월 초부터 말린다. 곶감 맛을 떠올리며 먹어서 그런지 생산지에서 연시 상태로 맛본 고종시는 생각보다 단맛이 덜했다. 고종시는 역시 곶감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곶감을 새로 말리는 시점이기에 작년에 말린 것은 거의 남은 게 없다. 아마도 12월20일 전후가 되어야 햇곶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50일 동안 떫었던 감은 겨울이 돼야 비로소 다디단 곶감이 된다. 고산농협(063-244-9006)
예로부터 소고기로 유명한 고산…
운 좋으면 100그릇 한정판 갈비탕을 맛볼 수 있고,
육회비빔밥은 그야말로 ‘강추’
완주군 고산면은 다양한 한우를 생산한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칡소, 흑소를 사육해왔다. 누런빛을 띤 한우는 거세우, 암소, 황소를 고루고루 키우고 있다. 다양한 한우를 생산하기에 옛날부터 전주에서도 생고기 맛을 보러 일부러 찾는 곳이 고산이다. 고산의 한우 브랜드는 고산미소다. 고산에서 고기를 먹고 나면 미소를 두 번 짓는다. 먹으면서 탁월한 맛에 짓고, 계산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짓는다. 특히 미경산 암소를 먹고 나면 미소 짓는 시간이 곱절로 늘어난다. 육질은 보드랍고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감도는 것이 같은 등급이라도 거세우가 가지지 못한 맛이다.
육회가 넉넉하게 든 고산 육회비빔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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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이나 순창, 순천 출장길에 밥때가 되면 일부러 고산을 들르기도 한다. 익산~순천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생각만 했지만, 이제는 완주 나들목에서 10여분이면 고산이라 접근성이 좋아졌다. 하루 100그릇 한정인 갈비탕은 어쩌다 운이 좋으면 먹었고 대부분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육회비빔밥은 어디나 있지만 고산의 육회비빔밥은 육회 양으로 특별나다. ‘물 반, 고기 반’에서 물을 밥으로 바꾸면 완벽한 설명이 된다. ‘밥 반, 고기 반’으로 말이다. 육회비빔밥을 먹을 때 항상 아쉬운 것이 육회의 양인데 고산에서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항상 가득 차려진 전주비빔밥과 달리 반찬은 별로 없다. 고산미소(063-261-4008). 경기도 화성시에도 고산 한우작목반에서 운영하는 판매장 겸 식당이 있다. 다만 고산면과 같은 육회비빔밥은 없고 갈비탕만 있다. 고산미소 화성점(031-354-5760)
■ 할머니와 국수
해콩을 막 수확하는 이때, 두부·순두부도 안 먹으면 후회.
하지만 60년 전통의 ‘멸치국수’를 빼먹으면 고산장에 다녀온 것이 아니다
해콩으로 만든 순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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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에서 대둔산 너머는 금산이고, 모악산 너머는 순창과 정읍이다. 높은 산을 끼고 있는 지역은 가을이 일찍 오고 빨리 가지만 대신 맛있는 콩이 난다. 벼 수확이 끝나면 그다음 남은 것이 콩 수확이다. 11월이 돼야 비로소 해콩이 난다. 햇것들은 가을이 주는 축복이다. 1년 중 두부가 가장 맛있는 때다. 콩으로 만든 된장은 묵어야 맛이지만 두부는 해콩을 갈아넣어 만들 때가 가장 맛있다. 두부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들은 아침 두부와 저녁 두부 맛도 다르다 하는데, 해를 넘긴 콩과 해콩으로 만든 두부는 당연히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완주군 소양면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두붓집들이 여럿 몰려 있다. 한 집이 시작해 사람이 몰리니 두부 파는 식당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두부 넣고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도 좋지만 몽글몽글 부드러운 식감의 순두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아이들과 같이 가도 좋은 게 두부와 돼지고기로 만든 탕수육과 우리밀 돈가스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사하고 난 후 입구에서 파는 두부도넛도 입가심으로 괜찮다. 시간이 지나도 쉬이 딱딱해지지 않는다. 두부 먹기 좋은 계절이다. 화심두부(063-243-8952)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만 얹은 할머니 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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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뵌 적이 없다. 대신 전국을 다니면서 할머니는 자주 본다. 식당 간판에서 말이다. 어디를 가든지 메뉴만 바뀔 뿐 꼭 한 번은 마주친다. 완주군 봉동읍에도 유명한 할머니가 있다. 봉동 할머니의 장사 경력은 60년이 넘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고산의 한우 생산자도 어릴 적에 할머니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메뉴는 멸치국수 딱 하나다. 먹성에 따라 대·중·소 구별만 한다. 보통의 국숫집이라면 으레 있는 비빔국수도 없다. 내온 국수는 모양새가 간결하다. 포항의 할머니 국수는 부추나 시금치 고명이라도 있지만 봉동 할머니는 그마저도 없다. 맑은 국물에 빨간 고춧가루만 뿌린 채 나온다. 반찬으로 된장과 풋고추, 김치가 나온다. 5~6개월 묵혀서 나온 김치가 국수의 고명 생각을 지운다. 잘게 자른 김치를 얹어 먹다 보면 금세 한 그릇 뚝딱이다. 고명처럼 뿌린 고춧가루는 국물에 살짝 매운맛으로 포인트를 준다. 대전에서 생산한 국수가 쌓여 있기에 거기 것을 쓰는 까닭을 물으니 많이 다르다고 하신다. “쫄깃혀.” 가장 작은 소(小)자가 3500원이다. 할머니 국수(063-261-2312)
■ 필자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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