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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이응노미술관의 산수-억압된 자연, 새로운 담론과 동양화의 활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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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재록 작가의 ‘Another Act’. 이응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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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동아시아 화단은 그동안 끊임없이 혁신적 동양화·수묵정신을 외쳤다. 하지만 상투적인 옥시덴탈리즘·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에 갇혀 전통을 혁신하거나 시대에 걸맞은 독자적인 미술담론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제는 근본적 질문, 뒤집어보기를 통해 동양화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생산적 논의들,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야 할 때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큐레이터인 윤재갑 관장(중국 상하이 하우아트뮤지엄)의 말이다.

대전 서구 있는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산수(山水)-억압된 자연’은 산수화로 상징되는 동양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는, 아니 아예 뒤집어보는 전시회다. 윤 관장과 인식을 같이하는 류철하 이응노미술관장(큐레이터)이 공동기획했다. 이들은 “전시회를 통해 논쟁이 벌어지고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져 동양화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활로의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자연친화적이라는 일반적인 동양의 전통 화론·자연관에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산수화의 토대인 ‘삼원법’을 아예 해체시킨다. 서양의 투시원근법과 비교되는 삼원법은 자연경관(대상)을 정면에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와 뒷면까지 바라보는 3가지 시점을 말한다. 11세기 북송시대 화가 곽희가 화론 <임천고치>를 통해 종합·정리했다. 산수화는 이런 다시점을 한 화면에 구사, 서양 풍경화와 차별되는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그런데 전시회에선 이 삼원법을 인간의 입맛에 맞게 자연을 해체·편집하는 반자연친화적·자연 억압의 시각으로 본다. 또 분재, 풍수지리사상에서도 세속적 욕망을 위해 자연에 행하는 인간의 폭력성을 끄집어낸다. 전시장에는 고암 이응노(1904~1989)를 비롯해 한국·중국 작가 9명의 회화·비디오·설치 등 80여점이 나왔다. ‘군상’ 등 고암의 작품을 통해선 군부독재시절 속에서도 현대 수묵화의 새 길을 연 고암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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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쉬빙 작가의 ‘백 그라운드 스토리:루산’. 앞에서 보면 아름다운 산수화이지만 뒤를 보면 온갖 쓰레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응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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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스포츠카 등의 소재를 수묵화로 표현해 주목받아온 장재록은 전통적 산수를 디지털 픽셀의 이미지로 해체·재구성, 삼원법의 유용성·가치를 되묻는다. 윤 관장은 “삼원법이 고전역학의 가시적 세계에서는 작동할 수 있는 원리일지 모르지만 이제 양자역학의 비가시적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며 “이는 디지털시대에 산수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 주목된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중국 작가 장위, 쉬빙도 독특한 작품들을 통해 산수화의 의미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또 동양에서 배제·억압한 여성성을 민화풍으로 풀어내 페미니즘적 동양화를 선보이는 김지평을 비롯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이름난 이이남·오윤석 작가, 중국 뉴미디어 대표작가인 펑멍보와 션샤오민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월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의 논의를 종합, 내년에는 일본·대만 작가·학자들도 참여하는 전시로 중국에서 순회된다. 윤 관장은 “3년 뒤쯤에는 동양화의 가치에 대한 생산적 논의와 새로운 활로 등을 모색한 성과를 묶은 단행본이 출간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2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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