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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천년 넘게 잠들었던 가야 유물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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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립중앙박물관이 2019년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을 개최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를 한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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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에서 명멸(明滅)했던 '오래된 미래'가 2019년 서울 한복판에 되살아났다.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지리산 이남 지역의 능선마다 불룩하게 솟은 고분에서 1000년 넘게 잠들었던 가야 유물이 이윽고 깨어나 비밀스러운 유리 진열장에서 관람객을 조용히 맞기 시작했다. 먹먹한 시간이 담긴 토기와 철기 앞에 서면 어디선가 가야인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대 가야의 문화를 재인식하고자 '가야본성(本性)-칼과 현' 특별전을 내년 3월 1일까지 연다고 2일 밝혔다. 이날 오전 개최된 언론공개회에서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삼성미술관 리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31개 기관이 출품한 가야 문화재 2600점을 한자리에 모은 대대적인 전시"라고 소개하고 "특별전 관람객으로 100만명을 예상한다"고 웃으며 자신했다.

시간의 심연으로 진입하듯 약 20m의 검은 진입로를 걸어 직진하면 올해 3월 고령 지산동에서 발굴된 흙방울 한 알이 관람객을 맞는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5.5㎝짜리 토제방울은 5세기에 사용된 주술방울로, 김수로왕 탄생 신화를 새긴 여섯 방울 중 하나로 추정된다. 고개 돌려 입구 좌측엔 5층으로 돌을 쌓은 파사(婆娑)석탑이 이번 특별전 무게중심인 양 우뚝했다. 수로왕의 비(妃)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넜던 48년, 파신(波神)의 노여움을 잠재우려 배 아래에 넣었던 돌로 추정된다. 석탑의 뜻을 상상한 대승 일연의 문장이 LED 화면에서 고요하다. "탑을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던 사람들이 탑을 깨서 파사석을 가지고 갔기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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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탄 모양 토기


가야본성 특별전은 '공존→화합→힘→번영'의 네 공간으로 쪼개진다. 가야의 존재 방식이던 공존과 공존을 지킬 수 있던 힘, 그리고 번영하여 존재할 수 있던 시간을 순서대로 배치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모자이크처럼 흩어졌던 가야 시대의 보석 같은 유물은 공동 공간에서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가령 창원 석동고분, 함안 말이산 45호묘,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각각 발굴된 서로 다른 크기의 집모양 토기를 하나의 유리전시관 안에 모았다. 토기 하나에 간직된 시간의 손때는 1000년 넘는 시간을 각기 버틴 뒤 운명처럼 조우했다.

네 방향으로 정렬한 세움장식이 일품인 금관(金冠), 무사 모형의 뿔잔은 특별전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세밀한 문양 덕분에 탄성을 내지르고야 마는 금관은 리움 소장품으로 국보 제138호, 기병 등 뒤로 솟은 형상이 기이한 뿔잔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으로 국보 제275호다. "뿔잔은 중장기병의 중요한 의례에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전사를 뜻하는 중장기병은 적진을 향해 돌진해 보병 대열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았다"고 윤온식 학예연구사가 설명을 이었다.

실력자의 사후(死後)를 위하여, 산 사람을 함께 묻던 가야 풍습은 이승의 죽음을 초월한 뒤 저승에서의 삶을 기원하려는 사유의 결과였다. 바로 순장(殉葬)이다. 그래서인지, 가야왕 무덤은 시간의 시작과 끝을 고민케 한다. 지산동 무덤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는데 주변인 유물이 빼곡하다. 김훈의 장편 '현의 노래'의 문장이 전시실에서 한 단락씩 점멸하며 왕을 따라 죽은 시종(侍從)을 진혼한다. '순장자들은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았다. 늙은 부부가 머리와 다리를 거꾸로 포개고 한 구덩이 속에 누웠고 젊은 부부는 아이들 사이에 끼고 모로 누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호위무사가 쥐었으리라 추정되는 고리자루 큰 칼 2개도 가벼이 봐선 아니될 유물이다. 용이나 봉황 장식을 별도로 제작해 손잡이에 끼웠는데 빛깔과 무늬가 찬란하여 오래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빛이 강렬하다. 뚜껑에 '대왕(大王)'이라고 새긴 긴목항아리의 무수한 상처도 세월의 흐름을 증거한다.

배기동 관장은 "520년간 이웃으로 공존했던 가야 여러 나라들은 강자의 패권으로 전체를 통합하지 않았다. 개별성을 부정하지 않는 건 가야의 존재 방식이었으나, 동시에 멸망 원인이었다. 가야의 운명은 결국 '국가와 평화'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능선을 따라 배치된 가야 고분군은 삶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 간 조화를 이루려는 지극한 경지를 일깨워준다"고도 덧붙였다. 특별전은 내년 4월 1일부터 두 달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이후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규슈국립박물관에 순회 전시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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