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OECD 자문관 “시한폭탄이 된 불평등…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을 국민에 설명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가 자르니츠 포용성장 자문관 인터뷰

상위 10%가 세계 자산 절반 소유…부의 대물림도 심각

불평등은 성장 저해…교육 등 미래지향적 투자 중요

반세계화 극복은 반도체 등 특정 산업 의존을 피해야

경향신문

지가 자르니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용적 성장 정책자문관이 지난 2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코엑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칠레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에 의해 도시 곳곳이 불타고 있다. 메신저 프로그램 과세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는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부정부패와 경제난 때문에 일어난 시위로 수백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들 시위의 밑바탕에는 극심한 불평등 문제가 깔려 있다. 불평등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몇 해 전부터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포용성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성장담론으로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국제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지가 자르니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용적 성장 정책자문관은 지난 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불평등을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며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두가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포용성장’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OECD가 그동안 축적해온 자료를 분석해보니 소득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소득 규모가 10배나 많았다. 우리는 이것을 ‘10-10-10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소득 상위 10%가 전 세계 자산의 절반을 소유할 정도로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졌다.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아이가 태어난 후 태어났을 당시의 계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의 대물림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같이 굳어진 불평등이 포용성장을 연구하게 된 이유였다. 연구의 초점은 ‘불평등이 성장을 어떻게 저해하는가’였다. 이 과정에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같은 지표를 넘어선 실제 삶을 반영하는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래 지향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사람과 지역사회,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어린이에게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어린이에게 투자하는 것은 수십년 뒤의 주요 인적자원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분배정책과도 이어진다. 교육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과 같다. 한국의 경우 사회복지 지출이 GDP 대비 11%로 OECD 회원국 평균(20%)에 비해 낮기 때문에 늘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한국은 과거 고성장을 기록했다. 과거처럼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이 놀라운 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1970년대 1인당 소득이 OECD 평균의 6%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90% 수준까지 올랐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국민이 성장의 혜택을 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성과의 이면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 기업 간의 불평등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 문제가 발생했다.”

-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을 끌어올려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는데 어떻게 보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정책 하나로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에게 설명할 때도 ‘이 정책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알려야 한다. 단순한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불평등인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이라면 현재 어떤 문제점이 관측되고,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직원들의 소득 간 격차, 근무환경 격차와 어떻게 비례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교역이 위축되고 미·중 무역분쟁 등 반세계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반세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세계화의 혜택이 특정 국가, 계층에만 돌아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사실 교역은 모두에게 이롭다. 그런데도 산업 간, 기업 간 불균형으로 (혜택이 특정 계층에만 돌아갔기 때문에) 교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특정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도 불리하다. 한국은 반도체라는 특정 품목의 수출 비중이 전체 수출에서 20%를 차지한다. 만약 반도체 품목을 두고 다른 국가와 무역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 경제엔 위기가 온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수많은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유입되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탈락하는 역동성이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인력의 숙련도도 높여야 한다.”

-기업의 역동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

“그동안 한국의 친기업정책이 특정 업종의 재벌과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경제력 집중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이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정책은 제조업 내에서도 특정 업종에 치중해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도 아주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직원의 숙련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유능한 인재를 대기업에서 가장 먼저 확보하는 구조에서는 창업도 어렵다. 이제는 격차를 어떻게 좁힐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노동시장 유연화 통한 성장은 환상…교육·노조 통한 ‘권력 재분배’도 필요”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국제학술회의 참석자들의 조언

“앞으로 ‘평등’이 경제성장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평등을 보장하려면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충분한 돈을 써야 한다.”

3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코엑스에서 ‘세계가 바라본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을 주제로 연 국제 학술회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제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세계 각지에서 온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임금 격차 및 소득 분배 개선뿐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불평등과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것을 권고했다.

리처드 코줄-라이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발전전략국장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경쟁력 증진과 투자 촉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념은 환상”이라며 “소득 재분배와 고용증진을 통해 가계소득을 증가시킴으로써 총수요의 증가에 기반한 성장동력의 회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개혁조치를 하려면 재분배와 정부 지출의 증가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정부 지출은 지금보다 각각 연간 1.5%와 2%, 조세수입은 연간 2%와 3%씩 증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래야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사회복지정책 외에도 ‘권력의 재분배’가 거론됐다. 아우렐리오 파리소토 국제노동기구(ILO) 국가정책개발팀장은 “유럽이 성공적으로 불평등을 억제하는 배경은 전통적인 재분배 정책과 단체협상, 공공서비스 제공 등 사전분배정책을 잘 조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통한 사후적 재분배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저렴하고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분배정책도 함께 펼쳐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기업과의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고 불합리한 단체협상 개정을 막아 불평등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줄이는 데도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이토 준 일본 국제기독대 교수는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소비가 그만큼 늘고 있지는 않다”며 “비정규직이 만연해 임금이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임금이 올라도 미래가 불안한 일본인들이 저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토 펭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이민자 유입이 혁신을 추진하고 성별 임금 격차가 개선될 때 가계의 노동소득이 크게 올라간다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캐나다 정부는 양성평등과 다양성 확보를 중요한 경제정책 과제로 여긴다”고 말했다.


박상영·박은하 기자 sypark@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