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연합시론] 퀄컴 1조원 과징금 판결, 글로벌 대기업 '갑질 차단' 계기되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국내 법원이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T) 기업인 퀄컴이 관련된 1조원대의 과징금 소송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4일 퀄컴 계열 3개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2016년 공정위가 부과한 1조300억원대의 과징금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공정위는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한 퀄컴이 인텔 등 경쟁 관계인 통신용 칩 제조사에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품 공급을 볼모로 휴대폰 제조사에 라이선스 이용을 강요하는 등의 갑질로 폭리를 취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3년만에 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재판 결과는 미국의 애플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외 휴대폰 업체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고, 미국의 인텔과 중국 화웨이, 대만 미디어텍, 스웨덴의 에릭슨 등은 소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해 일찌감치 국제적 파장을 예고했다. 아직 최종심이 남아 속단은 이르지만,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낼 경우 퀄컴에 뼈아픈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퀄컴은 비슷한 불공정행위로 중국과 대만, 유럽연합(EU)에서도 현지 당국으로부터 각각 한화 추산 1조원 안팎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는데 한국 법원의 판결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퀄컴을 코너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연구개발과 막대한 투자를 통해 확보한 기술은 지식재산권으로 법의 보호받아야 하며 이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2만개가 넘는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퀄컴은 독점 기술을 무기로 세계 각국에서 과도한 갑질과 폭리로 지탄을 받고 있다. 이번 재판에서도 드러났듯 퀄컴은 국제표준화기구에 특허 사용을 원하는 사업자에게 관련 특허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확약(FRAND)을 하고 표준필수특허의 독점보유자 지위를 인정받았음에도 이를 위배했다. 이런 행위에 우리 공정위와 법원이 철퇴를 내린 것은 당연하다. 미국 연방법원도 이미 지난 5월 퀄컴이 무선통신용 칩 시장에서 반(反)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조사 결과를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구글 등 글로벌 공룡 IT·플랫폼 기업들이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배경으로 자행하는 각종 불공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정위는 네이버 등 국내 기업은 물론 구글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 등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서도 불공정 행위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퀄컴의 1조원 제재에 비견할만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했는데 업계에서는 구글의 불공정행위 정황을 포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공정위는 엄정하고 전문성을 갖춘 조사로 예외 없이 국내외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파헤쳐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편익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이어질 글로벌 대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불공정행위 적발이 미칠 통상·외교적 마찰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공정위의 퀄컴 과징금 부과와 관련 지난해 3월 한국이 지식재산권의 상업화를 방해하는 규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자국 기업들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가 이어진다면 미국 정부의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외국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는 한편 설득력 있는 논리를 세워 후폭풍이 생기지 않도록 외교에도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