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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79세 치매환자에 DLS 판 은행, 손실액 80% 물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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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올봄, 어떤 금융 상품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DLS(파생결합증권)에 1억1000만원을 넣었다가 몇 달 사이 2300만원을 날린 79세 투자자 A씨에게 은행이 손실액의 80%(1840만원)를 물어주라는 분쟁 조정 결과가 나왔다. 배상 비율 80%는 감독 당국의 역대 분쟁 조정 배상 비율(최고 70%)을 뛰어넘는 최고 수준이다. 이 투자자는 투자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귀도 잘 안 들리는 경증 치매 환자였다.

5일 금융감독원은 대규모 투자 손실을 빚은 DLS·DLF 가입자들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분쟁 조정 신청자 6명에 대해 배상 비율을 최저 40%에서 최고 80%로 결정했다. 이날 첫 결정이 나온 6건은 현재 금감원에 DLF 관련 분쟁 조정을 신청한 276건 중 대표 사례로, 앞으로 남은 분쟁 조정의 기준이 될 전망이다. 9월 말 기준 DLF 가입자 3021명이 투자한 6564억원 가운데 예상 손실액은 약 3500억원에 이른다. 감독원은 손실액의 절반가량을 불완전 판매 사례로 보고 있다. 절반에 대한 배상 비율을 평균 50%로 잡으면 은행이 가입자에게 875억원가량을 물어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9월 이후 기초 자산인 독일 채권 금리가 급등해 상당수 투자자가 손실을 회복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번에 심사한 6건 모두 명백한 불완전 판매 사례로 판단했다. 예금을 하러 온 투자자의 투자 성향을 '공격 투자형'으로 임의 분류한 것은 명백한 '적합성 원칙 위반'이라고 봤다. 원금을 전부 잃을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인데도 '손실 확률 0%' '안전한 상품' 같은 표현을 써가며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은 '설명 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위반만으로도 배상 비율 30%가 매겨졌다.

여기에 은행 본점 차원에서 과도한 수수료 수익 영업에 집중했고 상품선정위원회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등 심각한 관리 부실이 있었다고 보고 '내부 통제 부실 책임' 배상 비율 20%를 추가했다. 이제까지 불완전 판매 분쟁 조정은 영업점 직원 차원의 위반 행위만 따졌을 뿐 본점 책임을 물은 적은 없었다.

이날 분쟁조정위원회에는 금감원 측에선 금융 소비자 보호 담당 이상제 부원장 등 2명이 입회했고, 법조계와 학계, 금융계 인사 등 총 10여 명이 조정위원으로 들어갔다.

금융계에서는 “결국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인데, 배상 비율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분쟁 조정의 당사자들은 통보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게 되며, 다시 소송을 제기해 다툴 수 없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분조위 결정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감원은 나머지 투자자들에 대해선 은행이 이번 ‘기준’에 따라 배상 기준을 세워 고객에게 개별적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가 자율 조정 배상 기준에 불만이 있으면 금감원 분쟁 조정 신청을 하면 된다. 이날 배상 비율을 받아 든 DLF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이하 DLF비대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DLF 비대위 관계자는 “가입자들에게 일부라도 책임을 물으려면 제대로 설명하고 판매해야 했는데, 불완전 판매가 아니라 사기 판매에 가깝다. 전액 물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DLF(derivative linked fund)

DLS는 금리, 환율, 원자재 같은 기초 자산 가격이 특정 기간에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을 경우 약정 수익률을 지급하되,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 손실을 보게 되는 파생 상품을 말한다. 주가나 주가지수를 기초로 한 것만 ELS(주가연계증권)로 구분해 부른다. 우리·하나은행은 DLS 여럿을 묶어 펀드 형태로 판매했는데 이를 DLF라고 한다.







김은정 기자(ej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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