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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용균아 미안하다···다시 싸우는 우리를 응원해줘" 고 김용균씨 동료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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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1월 고 김용균씨의 49재와 추모제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 놓여졌던 김씨의 전신 조형물. |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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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야간근무를 하다 숨진 24살 청년 고 김용균씨를 기리는 ‘청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가 7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열렸다. 주최측 추산 1200여명이 참가해 1년이 지났어도 그대로인 ‘위험의 외주화’ 현실을 고발했다. 김씨의 기일은 오는 10일이다.

이날 추모대회에서는 김씨의 일터 동료 장근만씨의 편지가 낭독됐다. 장씨는 이 편지에서 고인에게 “너를 묻던 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장씨가 말한 약속이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된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는 일이었다. 김씨가 숨진 후 가까스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조위(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권고안까지 나왔지만 정작 정부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장씨는 편지에서 “용균이 니가 죽고 나서 회사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하지 말아야 일을 했다’면서 너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했지, 그런데 특조위에서는 니가 ‘시키는대로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했어”라고 썼다. “요령 피우는 일 없이 너무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타박하던 기억도 난다”고도 했다.

장씨는 특조위의 권고안을 언급하면서 “기대도 했고, 이제는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구나. 우리는 아직 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너의 죽음이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탄식했다.

장씨는 “우리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깜깜하다, 우리의 안전과 미래도 마찬가지로 깜깜하다”면서 “우리는 용균이 너처럼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소식을 매일 듣는다,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가스에 중독되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네가 생각나고 온몸이 떨리고 괴롭다, 도무지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썼다.

장씨는 이어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싸우려고 한다, 우리를 응원해달라”고 덧붙였다. 편지 끝에는 어머니를 외롭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과 그의 생일(지난 6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담겼다.

아래는 장씨 편지 전문.

경향신문

12월6일자 그림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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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이에게

용균아 어제가 너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네. 작년 12월 6일 생각나지? 그날 우리는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호프집에서 웃고 떠들었지. 그 날 같이 술을 마시고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 컨베이어밸트가 너를 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또 호프잔을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저 하늘나라에서, 아니 광화문 광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생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고, 나는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구나. 1년 전 그날이 정말 그립다.

2월 9일, 62일만에 용균이 너를 묻던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네가 죽은 후에 문재인대통령은 사고 원인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했고,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사각지대를 점검하라고도 했다. 그리고 특별조사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어. 그래서 우리는 너를 묻을 수 있었어. 죽음의 이유가 제대로 밝혀질 거고, 재발방지대책이 나올 거라고 믿었어. 너의 죽음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니까.

용균이 니가 죽고 나서 회사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하지 말아야 일을 했다’면서 너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했지. 그런데 김용균 특조위에서는 니가 ‘시키는대로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했어. 요령 피우는 일 없이 너무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타박하던 기억도 난다. 특조위는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22개 권고안을 발표했어. 그래서 기대도 했고, 이제는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구나. 우리는 아직 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용균 특조위가 권고안을 발표한지 석달 반이 지났는데 정부는 권고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구나. 너의 죽음이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우리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깜깜하다. 우리의 안전과 미래도 마찬가지로 깜깜하다. 우리는 용균이 너처럼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소식을 매일 듣는다. 누군가가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가스에 중독되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네가 생각나고 온몸이 떨리고 괴롭다. 도무지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 정부는 벌써 너의 죽음을 잊고 묻으려나 보다.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네가 하늘나라로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구나.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줘. 우리를 응원해줘.

용균아, 너에게 한 약속이 또 있었지. 용균이 너의 어머니가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 약속 꼭 지킬게. 늦었지만 스물다섯번째 생일 축하한다.

2019년 12월 7일 일터 동료 장근만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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