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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 강연하며 인맥 쌓는 교수들…`폴리페서` 은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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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 서울대의 민낯 / 연구 몰입 방해하는 풍토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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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소재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학교 교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한 서울대는 2011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하는 등 변화를 모색했지만 조직 순혈주의와 비대화, 공무원 마인드, 자만감 등의 이유로 개혁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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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위과정에서 만나는 사회인들 면면을 보면 새삼 놀랄 때가 있습니다. 자리 욕심이 있는 교수라면 이들과의 인맥을 활용해 충분히 기회를 볼 수 있겠다 싶죠. 최근 '폴리페서' 논란이 많은데 이런 것부터가 폴리페서 양산을 유도하는 셈입니다."(서울대 사회과학대학 A교수)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한 서울대가 글로벌 일류 대학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데는 조직 순혈주의와 변화에 둔감한 공무원 마인드, 최고라는 자만감 외에도 폴리페서(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교수)를 양산하는 정치집단화 현상이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직 복귀를 두고 폴리페서 논란이 불거졌던 서울대 안팎에서 연구 풍토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는 1998년 BK21(두뇌한국) 사업을 계기로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이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위상을 활용해 학술 연구보다 교수 개인의 출세와 명예에 골몰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통상 '최고경영자과정' '최고위과정' '최고전략과정' 등으로 불리는 비학위과정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맥을 쌓는 네트워킹의 장으로 활용된다. 실제로 서울대가 운영하는 일부 과정은 지원 자격으로 국회의원, 정부기관 고위 공무원, 기업 사장·임원급 인사, 부장급 이상 판검사 등을 제시한다. 프로그램 참여 교수는 이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사회 진출 루트를 자연스럽게 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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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위과정에 참여한 B교수는 "소속 단과대학에서 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하면 그만큼 강연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대중에게 잘 알려진 교수는 외부 강연이나 각종 위원회에 위촉될 수 있고 사회활동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놓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교수 인지도가 오르고 유력 인사와 친해지게 되면 생각이 없던 사람도 정·관계 진출을 고려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학술 연구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 젊은 서울대 교수들이 총장 등 행정가나 폴리페서의 길을 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배경에는 '입신양명'의 유혹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기업 사외이사 겸직 활동도 본연의 연구 활동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기업에 대한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보수만 챙긴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서울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많은 교수가 사외이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는 교수 169명이 사외이사직을 겸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전임교원 2260명 대비 7.48%에 달한다. 다른 국립대가 1%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국립대 중 사외이사가 둘째로 많은 학교는 15명으로 집계된 경북대·부산대 등이다.

이러한 격차는 사립대와의 비교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정보 공개 요청에 응답한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 중 사외이사 겸직 교수가 가장 많은 성균관대(48명)의 3배 이상이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외부 활동에 적잖은 반감을 보인다. 교수들의 바깥 나들이가 잦을수록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대 교수들은 매 정권 10명 이상이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용돼 휴직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정무직에 임용돼 휴직한 서울대 교원은 총 48명(중복 휴직 포함)이다. 정권별로는 △노무현정부 13명 △이명박정부 15명 △박근혜정부 11명 △문재인정부 9명 등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인 C씨(34세)는 "교수들이 지식인의 사회 참여(앙가주망)를 이유로 정·관계에 진출한다지만 가장 중요한 활동은 연구"라며 "공직을 맡아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면 교수직을 사퇴하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장관이 된 후 스스로 교수직에서 사퇴했는데, 이런 모습이 폴리페서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가 공시하는 법인회계 세입세출 예산 현황에 따르면 연구를 위한 학교의 예산 지출은 줄어드는 추세다. 대학본부와 부속 지원기관 등에서 수행하는 교육·연구 지원 예산은 2017년 약 820억원에서 2018년 830억원으로 소폭 늘었다가 올해 761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줄었다. 단과대학과 전문대학원에서 진행되는 교육·연구 예산은 2017년과 2018년 두 해 연속 312억원으로 동결됐다가 올해 약 3100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등 2개 대학(원)이 신설됐지만 실질적인 투자는 뒤따르지 못하는 셈이다.

학계 안팎에서는 서울대에 흘러가는 국민 세금이 많은 만큼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올해만 해도 서울대 예산 8290억원 중 55.2%에 달하는 4576억원이 정부출연금인 만큼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주요 사립대 처장급 D교수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를 수혈하는 서울대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지금의 연구 풍토를 바꾸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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