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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지난해보다 줄어든 탄소배출 증가율…희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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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까지 1.5도 내 상승 목표 지키려면 매년 8%씩 줄여야

기후변화로 농업 생산 감소…기아 인구, 3년 새 4천만명 증가

파리기후협약 세칙 논의 중인 유엔기후총회, 13일 종료 촉각

경향신문

아프라카 국가 말라위의 한 초등학교에서 죽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 아이들. 기후변화로 인해 기아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컨선월드와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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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까지 대부분의 농사는 천수답(天水畓) 방식으로 지었다. 전적으로 빗물에 의존해 벼를 키웠다. 그러다 보니 가뭄에 대한 최고 수준의 대처는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기우제였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국가적으로 심각한 가뭄이 닥쳤을 때 국왕이 나서 기우제를 올리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작황이 불량해 식량이 부족해지면 민심이 떠날 가능성이 크고 이는 통치체제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쌀 생산량이 충분하다. ‘보릿고개’가 1960년대까지 이어졌을 만큼 만성적인 식량 부족이 현대까지 나타났지만 이젠 배고픔이 한국 국민의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신품종 보급과 관개 시설 확충 덕분이 컸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기아 인구에게는 찾아오질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기아 극복을 위해 노력할 당시에는 도드라지지 않았던 변수, ‘기후변화’ 때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지난주부터 열리고 있는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세계기상기구(WMO)는 유엔 산하 식량지원 기관에서 만든 보고서를 종합해 전 세계에서 영양 부족을 겪는 사람들, 즉 기아 인구가 2015년 7억8500만명에서 2018년 8억2100만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불과 3년 만에 굶주림을 겪는 사람이 4000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로 강우 양상이 불규칙해지고 있다”며 “작물 수확량이 위협받고 식량 문제가 야기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전체 농업 생산량의 5~10%가 기후변화로 인해 손실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기후변화 양상은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기가 어려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주 전 세계 단위의 학술단체인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가 올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이 368억t에 이르러 지난해보다 0.6% 증가했다는 추산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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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좋은 소식처럼 들린다.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이 2.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춤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이 정도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기온이 수직 상승하는 일을 막으려면 아예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년 큰 폭으로 줄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인류가 산업화 때부터 배출한 이산화탄소로 인해 잘 달궈진 아랫목처럼 절절 끓는 상황이고, 지금 땔감을 조금 줄인다고 급격히 온도 상승이 꺾이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WMO 보고서에 따르면 1850년부터 2019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섭씨 1.1도 상승했다. 세기말까지는 80년이나 남았는데 ‘1.5도 내 상승’이라는 방어선의 80% 수준까지 이미 지구 기온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그럼 얼마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할까. 지난주 발표된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 목표인 ‘세기말까지 지구 기온 1.5도 내 상승’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매년 8%나 줄여야 한다. 인류가 실현해본 적 없는 수준의 목표다.

원래 지구 기온 상승폭은 얼마 전만 해도 이보다 다소 느슨한 ‘2도 내’가 국제적인 공감대였다. 2015년 세계 197개국은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파리기후협약을 맺으면서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되도록 1.5도 이하로 묶는 것을 목표로 천명했다. 그러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선 ‘1.5도 내 억제’가 좀 더 강한 어조로 제시됐다.

마지노선이 ‘1.5도’로 이동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장은 “급변하는 지구 상황을 감안해 과학계가 추가적인 연구를 해보니 ‘2도 상승’을 지킨다고 해도 생태계가 타격을 입는 걸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도 오르면 열대바다 생태계의 보고인 산호초는 대부분 파괴된다. 당연히 이곳에서 사는 물고기도 삶의 터전을 잃는다.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의 빙하 또한 치명적인 훼손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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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2도 오른 세상에서는 1억8900만명의 새로운 기아 인구가 생길 것으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전망했다.

기아 인구가 20% 늘어난다는 것인데 대략 전 세계적으로 10억명이 영양 부족에 빠진다는 뜻이다. 지구인 8명 가운데 1명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국제사회 전체가 비상한 각오를 해도 지구를 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처럼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거나 자국을 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느슨하게 하려는 각국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파리기후협약의 세부규칙을 만들기 위한 이번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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