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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빈 드 랑팡 제쥐(Vigne de L`Enfant Jesus) | 부르고뉴 대표 와이너리의 ‘아기 예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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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오면 한 해를 돌이켜봄과 동시에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럴이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마시기 좋은 와인으로 ‘빈 드 랑팡 제쥐(Vigne de L'Enfant Jesus)’를 추천한다. 레이블에 아기 예수가 그려져 있는 이 와인을 프랑스에서는 ‘아기 예수의 와인’이라고 부른다. 생산지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이너리 ‘부샤르 페레 에 피스(Bouchard Pere&Fils)’다. 부르고뉴에서 메종 루이 자도(Maison Louis Jadot), 메종 루이 라투르(Maison Louis Latour)와 함께 3대 와이너리로 꼽힌다. 12개 그랑 크뤼, 74개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포함해 코트 도르 중심부에 130㏊에 달하는, 부르고뉴에서 가장 많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매경이코노미

부샤르 페레 에 피스는 1731년 직물 사업을 하던 미셸 부샤와 그의 아들이 설립했다. 설립 당시에 구입한 건물은 부르고뉴 중심지인 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건물로 부르봉 공국이 통치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598년 부르봉 공국에 앙리 4세가 프랑스 왕으로 즉위했으니 약 42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1789년 5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수도원과 몇몇 영주들이 소유한 포도밭이 여러 소유주에게 분배됐다. 1791년 안토니 필리버드 부샤(Antoine Philibert Joseph Bouchard)는 프랑스 혁명 당시 압류된 귀족·수도원의 포도밭 중에 본 지역 최고의 포도밭 32㏊를 입찰해 사들였고, 이후에도 포도밭을 계속 사들이면서 확장했다. 1820년 본에 있는 성 ‘샤토 드 본(Chateau de Beaune)’을 매입, 확장해 지금의 본사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1995년 부샤 가족은 이 와이너리를 조셉 헨리오트(Joseph Henriot)에게 판매했고, 이로써 3세기 동안 9세대가 가족경영하던 전통이 끝났다. 이후 샤블리 지역의 윌리엄 페브르(William Fevre)를 인수하면서 부르고뉴 최고의 와이너리로 명성을 높였다.

빈 드 랑팡 제쥐 와인의 탄생 스토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3세의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 안도트리슈(Anne d’Autriche)는 불임이었다. 카르멜파수도회의 수녀 마르게리트는 왕비에게 “태양의 왕, 루이 14세를 출산할 것이다”라고 예언했고 이는 적중했다. 기쁨에 찬 프랑스 황실은 그 수녀가 속한 수도원에 포도밭을 선사했다. 원래 이 포도밭은 자갈이 많아 ‘레 그레브(Les Greves)’라 불렀으나 수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기 예수의 포도밭’이라는 뜻의 ‘빈 드 랑팡 제쥐’로 변경했다. 4㏊ 남짓한 이 포도밭은 오늘날 부샤르 페레 에 피스의 보석이다. 비록 그랑 크뤼 포도밭은 아니지만, 태양왕 루이 14세의 흥미로운 전설이 녹아 있어 양조장을 대표하는 포도밭이 됐다. 빈 드 랑팡 제쥐의 테루아 관련 토양은 석회암, 점토, 모래, 자갈로 구성돼 있다. 엄선한 포도송이를 손수확하고 오크 발효조를 사용한다.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13개월 동안 숙성하지만 빈티지에 따라 뉴 오크통을 20~60%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7월 부샤르 페레 에 피스를 방문했을 때 마케팅 담당자는 ‘샤토 드 본’ 지하 저장고를 안내하면서 “100만병이 훨씬 넘는 올드 빈티지 와인이 저장돼 있고, 그중에 19세기 와인도 5만병 정도가 있다”고 말했다. 5종류의 와인을 시음한 결과, 빈 드 랑팡 제쥐 2014년이 아주 돋보였다. 피노 누아 100%로 양조한 빈 드 랑팡 제쥐는 질감이 마치 아기의 피부와 같이 너무나 곱고 매끈해 한번 마셔보면 ‘아기 예수의 와인’이란 이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자줏빛의 붉은색을 띠고, 아로마는 과일·체리·블랙 라즈베리·다크 초콜릿·스파이스가 올라온다. 부드러우면서 우아하고, 깊고 짙은 과일향·향신료·미네랄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며 여운이 매우 매력적이다.

음식과의 조화는 오리고기, 크림소스를 곁들인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욕심을 낸다면 달팽이 요리, 쇠고기 스튜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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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겸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6호 (2019.12.04~2019.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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