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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김승유 전 회장의 DLF 사태 쓴소리…“은행이 터무니없는 상품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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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속 ‘고문’ 직함이 아직 좀 낯설다. 그를 회장이나 이사장이라 칭하는 데 더 익숙해서다. 하나금융지주 회장(2005~2012년)과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2009~2013년),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2009~2016년)을 지낸 김승유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을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2년 전 농가주택을 짓고 정착한 충남 당진에서 이날 아침 차를 몰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교육 정책을 주제로 사무실에서 시작된 인터뷰가 점심식사 자리로 이어지면서 주제도 최근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영화 ‘블랙머니’로 확대됐다.

중앙일보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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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 없애면 교육 정상화될까”



Q : 2010년 개교한 하나고가 내년이면 개교 10주년이다. 개교 뒤 한 해도 조용히 넘어간 해가 없었을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명문고가 됐다.

A : “내가 교육을 뭘 알았겠나. 하나고를 만들 때 ‘전문가한테 맡기자’ 해서 교육연구소에 용역을 줬다. 그때 나온 게 학생이 들을 과목을 선택하는 교과과목제, 예술·체육 활동을 1개씩 해야 하는 1인2기 교육이었다. 기숙사 생활도 요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데, 협동생활을 통해 배려·양보를 배워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대학입시 하나에 모든 교육제도를 건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주일 만에 교육제도 바꾸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나.”

Q : 하나고는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운 학교인데, 지금 정부는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며 일괄 폐지하겠다고 한다.

A : “공정·공평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고는 20%를 사회통합전형으로 뽑는다. 이를 통해 하나고에 들어온 보육시설 출신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우리 교육은 학부모 직업을 전혀 모른다. 가정환경을 쓸 수 없게 돼 있다. 그것도 잘못이다. 학생의 가정환경 모르고 심리상담도 못 해주면서 수학·과학만 가르치는 것이 전인교육인가. 정말 자사고·외고 없애면 우리 교육이 정상화되나. 그것과 관계없는 얘기다. 부작용이 있으면 찾아내서 개선해야지, 그 자체를 없애라? 이전에 교육전문가들이 하나고를 만들었을 때 냈던 그들 의견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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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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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했던 그의 표정이 “외손녀가 중학교 3학년”이라는 말과 함께 살짝 밝아졌다. 그는 “외손녀가 공부를 잘하는데, 꿈이 하나고 오는 거였다”면서 “요새 같은 때 (말 나올까 봐) 아예 지원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손녀의 일반고 진학을 위해 딸이 지난 여름에 이사를 계획하다가 집값이 너무 치솟아서 결국 포기했다고도 했다. 이사하려던 지역이 어디였는지 슬쩍 물어보니 대치동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대학입시에 손 떼라”



Q : 정시를 확대한다니까 강남 집 값이 뛰더라.

A :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 들여다봐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입시에 따라 고교 교과과정이 정해지는 건 맞다. 우리나라도 사교육 과열이 심해지자 깊이 생각해서 도입한 게 수시전형이다. 그런데 또 온갖 전형이 다 생겨서 학생과 학부모가 이해 못 할 정도가 됐다. 정부가 서서히 손 떼야 할 몇가지 것 중 하나가 대학입시다. 정부가 너무 모든 책임지려고 한다. 공정성에 위배되면 과감하게 철퇴를 가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지 ‘밥을 어떻게 떠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씹어라’까지 하는 게 정부 역할은 아니다.”

교육정책에 있어 정부가 전체적인 시장을 넓게 봐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자연스레 금융 이야기로 이어졌다.



“DLF 같은 상품, 왜 은행이 못 걸러냈나”



Q : 파생결합증권(DLF) 사태로 KEB하나은행이 시끄러웠다.

A :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DLF니, DLS(파생결합증권)니, 그런 건 사실 터무니없는 상품이다. 그게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에서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 고객이 동의서 썼다고 해서 그냥 판다는 것. 그건 프로페셔널로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Q : 하나은행은 전통적으로 프라이빗뱅킹(PB)에 강한 은행이었다.

A : “그래서. 우리(하나은행의 강점)가 그건데. 최대 이익이 4% 정도인데 최대 손실은 100%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건 아무리 고객이 동의를 하더라도 걸러줘야 한다. 이게 조직의 컬처(문화)가 돼야 한다. 신한, 국민은행은 (DLF를) 안 팔았다.”

그는 1997년 토털리턴스와프(TRS) 사건을 거론했다. 한국 금융사들이 1997년 초 JP모건과 환율차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TRS 계약을 맺었다가 8억 달러의 대 손실을 본 사건이다.

“당시에 상무가 TRS 계약을 하겠다며 행장실로 가지고 올라왔다. 한참 설명을 하는데, 내가 잘 모르니까 자꾸 물었다. 결국 그 상무가 나중엔 답변을 못 하고 ‘더는 나도 모르겠어요, 안 팔래요’ 하더라. 그게 일종의 컬처다. ‘고객 돈이 내 돈’이란 각오를 갖는 것이 컬처가 돼야 한다. 나중에 회사 합병을 하려고 보니까 보람은행도, 하나대투증권도 TRS를 갖고 있더라. 내부 시스템을 안 갖췄거나, 시스템은 갖췄어도 컬처가 안 돼 있던 것이다.”

한탄하듯 은행의 조직문화를 지적하던 그는 금융당국의 규제 일변도 정책엔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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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14일 DLF 사태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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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사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은행이 잘못했으니까 이제 판매 못 해? 그건 또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이 업계가 뭔가 발전하고 개선이 되겠나. 그건 아니다. 잘못한 것을 철저히 제재하면 다음에 안 하지 않겠나.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내 말이 틀렸나? 파생상품은 은행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투자은행(IB)과 손잡고 같이 상품을 개발한다. 그런데 이렇게 규제하면 그 다음엔 한국에 시장이 없으니까 해외 IB와의 네트워크가 끊어진다. 그게 아니라 은행이 그걸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DLF사태에 대해서는 분명히 제재하라, 대신 전반적으로 막는 것은 잘못이다. 그게 상식 아닌가.”



“론스타가 검은머리 외국인 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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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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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자리로 옮겨 인터뷰를 이어가다가 최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을 영화화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예상과 달리 그는 “외환은행 어쩌고 하길래 내가 극장에 가서 봤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렇게 만들어도 되나 했다”고 말했다.

Q : 영화에서 ‘자산가치 70조원짜리 은행이 1조7000억원에 팔렸다’고 나온다.

A : “픽션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왜 자막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썼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검은머리 외국인(외국인으로 가장한 한국인)’이 투자했다는 게 설정인데 말이 안 된다.”

Q : 내년에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투자자 간 소송(ISD)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앞서 5월에 국제상공회의소(ICC) 재판에서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에 전부 승소했는데.

A : “ICC 승소는 영화에 안 나오더라. 지난해 12월 내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재판에 열흘간 참석했다. 론스타가 협상과정에서 나와 통화한 내용을 몰래 녹취했더라. 론스타 측이 ‘정부가 시켜서 매각가를 깎으려는 거냐’고 여러 번 물어봤지만 나는 ‘아니다. 정부와 관계없이 너와 내가 협상하는 거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중재인이 우리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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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영화 속 한 장면.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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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서 영화 블랙머니 속 설정이 왜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사모펀드는 주주가 누군지를 공개 안 하는데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 한창 협상을 진행할 때 미국 각 지역 상하원 의원들이 주미 한국 대사관에 압박을 넣었다. 그래서 왜 그런지 물어보니까 대학기금과 목사 퇴직금, 소방관 퇴직금 같은 연기금이 론스타 주주로 들어와 있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아니다. 구체적인 주주가 있다.”

한애란·정용환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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