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발자취] 권총 차고 인플레이션과 싸워… "20세기 최고 중앙은행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지난 8일 사망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010년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 그는 ‘세계경제의 재균형’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진한 기자




지난 8일(현지 시각) 92세로 사망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독일 출신 경제학자 헨리 카우프만)으로 평가받는다. 볼커 전 의장은 192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런던정경대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재무부, 체이스맨해튼 은행 등을 거쳐 뉴욕 연준 의장에 올랐고,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인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해 1987년까지 8년간 재임했다.

당시 미국 경제는 매년 물가상승률이 10%를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1981년 기준금리를 21%까지 올렸다.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세력의 신변 위협 때문에 키가 2m가 넘는 그는 직접 권총을 차고 다니기까지 했다. 강력하고 일관된 금리 정책 덕분에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3년 3%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그에겐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고금리 정책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1980년대 미국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987년 볼커 전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이후 20년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잘 통제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볼커 전 의장의 충고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금융 관련 규제는 계속 축소됐고, 국가 부채는 커져만 갔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볼커 전 의장은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그는 2011년까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대형 은행 등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이른바 '볼커 룰' 도입에 앞장섰다.

올해 7월 그는 다시 주목받았다.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연준 의장 후임자들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제롬 파월 현 의장을 압박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취지였다.





안중현 기자(jhahn@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