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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데스스트랜딩 (2) -연결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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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은 게임 '데스 스트랜딩'의 게임 진행 및 최종 엔딩에 관한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스포일러를 크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주의를 요합니다. -

[게임의 법칙-165] 고지마 히데오의 '데스 스트랜딩'은 연결을 메인 테마로 다룬다고 프로듀서 스스로도 언론 등을 통해 자주 이야기한 바 있었다. 그 연결은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 안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통해 이뤄지는 대용량 실시간 정보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연결, 그리고 그 정보 연결로도 전달이 불가능한 물리적 실체를 연결하는 배송인 '포터'를 통한 연결이다. 플레이어가 직접 손댈 수 있는 연결은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게임이 다루는 연결의 테마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직접 끊어진 세계의 연결을 다시 잇는 과정의 주변부에서 조연으로 나타나는 연결의 상징 중 대표적인 개념으로는 게임 내 탯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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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스트랜딩`의 포스터 글자 아래로 드리워진 긴 끈들은 연결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연결의 의미는 게임 안에서 무척 다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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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의 연결: 끊어질 때 삶이 나오는 다른 의미로서

BT라고 불리는 존재들, 원래대로라면 죽은 자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넘어가야 했을 존재들이 이승으로 돌아온 사례인 BT들은 게임 설정상 일종의 반물질로 이뤄진 존재들이다. 이들은 물질계인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데, 기묘한 방식으로 저승과의 연결을 이어나가고 있기에 BT는 현실의 물질계를 활보한다. 저승과 BT를 연결하는 이 가느다란 끈은 '탯줄'로 불린다.

탯줄은 포유류에게만 존재하는 기관이었지만 게임 진행을 통해 새롭게 만나는 가설은 이 탯줄이 포유류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BT라고 불리는 멸종 유발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포유류의 진화에 개입한 것으로 설명된다. 특정 생명체를 그 원천과 이어 주는 개념으로서의 탯줄은 BT를 비롯한 저승의 멸종체들이 원조라는 것이다.

탯줄은 '데스 스트랜딩'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소재다. 연결이 메인 테마라지만 이 게임을 뒤덮은 가장 큰 소재는 삶과 죽음이기 때문이다. 탯줄은 한 생명체가 처음으로 그 모체로부터 분리되면서 독립적인 생명체로 홀로 서게 된다는 점에서 끊어질 때 비로소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역설을 품은 개념이다. 게임이 그토록 연결과 연결의 복원을 강조하지만 탯줄은 끊어질 때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기능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런 탯줄의 의미는 실제 게임 상에서 자주, 또 무겁게 등장한다. 플레이어는 특정 시점 이후에 얻는 장비를 통해 BT를 피하거나 정면에서 공격하는 대신, 뒤로 몰래 잠입해 BT와 저승을 잇는 BT의 탯줄을 끊음으로써 BT 지역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플레이어에게 새롭게 추가되는 이 BT 극복 방법은 실제로 게임 안에서 꽤나 유용해 자주 쓸 수 있는 기술로 등장한다.

탯줄을 끊는 행위 이상으로 무게가 실리는 장면들은 스토리 진행상에서도 두드러진다. 두 가지 장면을 짚을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주요 등장인물인 마마의 에피소드다. 중반부 과학자 '마마'는 늘 아이를 키우느라 오래 대화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밝혀지는 진실에 따르면 마마의 아이는 데스 스트랜딩 초기에 일어난 폭발로 임신한 마마가 무너진 건물에 깔리며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다만 마마와 죽은 아이를 이어주는 저승의 탯줄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건물에 깔려 죽은 마마 또한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이승의 어머니와 저승의 아이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이어진 채 존재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마마와 아이의 연결을 끊음으로써 비로소 둘은 영면에 들지만, 곧 마마의 쌍둥이 자매가 마마의 영혼과 연결되는 모습을 게임은 보여주며 탯줄을 끊는 것이 영원한 단절이 아님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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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마마의 BT 탯줄은 결국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해 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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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은 플레이어가 수시로 보게 되는, 프라이빗 룸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BB를 자신의 슈트 케이블과 연결하는 장면이다. 게임 속에서 BB는 'Bridge Baby' 약자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의 아이를 이용해 BT를 감지하는 기계로 사용된다. 플레이어는 가슴에 BB가 들어 있는 포드를 달고 이를 자신의 슈트 케이블에 연결함으로써 주변 BT를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매번 BB를 연결할 때마다 등장하는 컷 신은 포드 안 아기 시선으로 연출되며, BB의 기억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각난 기억들이 모이면서 BB의 비밀이 밝혀질 것처럼 보이나, 게임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은 그 모든 기억이 BB의 기억이 아닌, 주인공 샘 포터 브리지스의 기억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BB와 샘 포터의 연결은 어떤 정보가 실제로 오간 연결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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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포드의 BB와 연결할 때 나오는 기억은 게임 최후반부에서야 반전을 통해 BB의 기억이 아닌 주인공 샘의 아기 시절 기억임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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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은 결코 한 가지 의미로만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작자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연결의 중요성을 다룬 게임이라는 말은 '데스 스트랜딩'이 표면적으로 퀘스트 진행을 통해 다루는 것처럼 단선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된다. 게임이 다루고자 한 것은 '연결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세계의 재건에 별 관심이 없던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연결 중요성을 강조하고 들판으로 내민 것은 미국 사회의 재건을 위해 연결의 복구가 필요하다는 '국가'라는 단위의 입장일 뿐임에 유의해야 한다. 국가와 단체는 연결을 원하지만 카이랄 네트워크의 복원이 완료될수록 오히려 세계의 멸망 또한 가속화될 수 있다는 양가적인 사건 진행이 일어남을 게임은 보여준다.

최종적으로 멸종체인 아멜리는 저승인 '해변'에 존재하며 플레이어를 만나고, 마지막 선택으로 해변과 이승의 연결을 끊으면서 다가오는 필연적 멸종을 미루는 선택을 한다는 점 또한 이 게임이 연결을 그저 단순하게 '이뤄야만 할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가장 큰 사례다. 연결이 끊어지면서 생명이 탄생하고, 그렇게 탄생한 생명체들이 다시 서로를 이어 가며 사회를 이루는 과정은 연결됐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순환의 세계다. 모든 것이 다 연결된다는 것이 지고지선은 아니라는 점을 게임은 끊임없이 탯줄과 카이랄 네트워크의 이중성, 혹은 모순성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그렇기에 연결은 비로소 게임을 뒤덮는 또 하나의 테마, 삶과 죽음의 이야기와 얽힌다. 모든 생명은 근본적으로 불연속적인 존재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우리의 결말이 곧 죽음을 통한 소멸임을 인지한 채로 '살아'간다. 불연속적이고 찰나적인 삶임을 알기에 우리는 끝없이 자신이 연속적이기를 원하며, 그것이 연결을 원하는 욕망의 근원이라고 프랑스 사회학자 바타유는 주장한 바 있다. 이 오묘한 관계 속에서 연결은 삶을 낳고 동시에 죽음을 향하며 그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데스 스트랜딩'이 묘사하는 연결은 그래서 연결의 긍정과 부정 모두를 포함하는 보다 복합적이고 거대한 개념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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