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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인터뷰] ‘미친 아이디어’를 현실 속 제품으로…러쉬 개발자 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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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퍼퓸 라이브러리’ 개점, 세계 다섯 번째
통역사에서 제품 개발자로…6개 제품 특허 출원
LGBT 인권 보호 캠페인 주도…"목소리 내야 변화 일어나"

‘향기’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있다.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다. 직원들이 매장 입구의 세면대에 입욕제를 풀고 수십 미터 떨어진 곳까지 향을 풍기는 모습은 국내 소비자에게도 친근하다. 러쉬는 전 세계 56개국에 100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그곳엔 ‘미친(Crazy) 아이디어’를 현실 속 제품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지난 6일 러쉬 경리단길점에서 알레산드로 코미쏘(32·이하 알레)를 만났다. 알레는 러쉬의 콘셉트 매장 ‘퍼퓸 라이브러리’의 개점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점심때 먹은 비빔밥이 너무 맛있었다"는 그는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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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제품 개발자 알레산드로 코미쏘가 지난 6일 오픈한 러쉬 명동역점의 내 ‘퍼퓸 라이브러리’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러쉬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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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퓸 라이브러리는 러쉬의 향수 전문 매장이다. 국내에는 지난 6일 러쉬 명동역점에 숍인숍(매장 안에 매장을 내는) 형태로 문을 열었다. 러쉬 퍼퓸 라이브러리는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영국 리버풀, 일본 신주쿠, 독일 뮌헨, 한국 명동 등 전 세계에 5곳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러쉬는 친환경 천연 원료를 사용해 입욕제, 비누, 섬유 탈취제 등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향수를 주력 제품으로 보긴 어렵지만, 사실 러쉬는 향수 제품에 관한 자부심이 강하다. 러쉬는 창립 초기부터 꾸준히 향수를 개발하고 출시해왔다. 심지어 러쉬 창업주인 마크 콘스탄틴은 전문 조향사다. 향수의 주원료인 에센셜 오일은 100% 자연 성분을 사용하고, 산지와 직거래를 통해서만 공수한다. 향수 개발부터 제조, 생산, 유통까지 가능한 내부 시스템도 갖췄다.

퍼퓸 라이브러리는 이런 러쉬 향수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단순히 향수만 판매하는 개념이 아니라, 각 제품에 녹아있는 스토리를 고객과 공유한다. 실제 매장 직원은 고객에게 향수 시향 서비스는 물론, 향수의 제조 성분과 개발자의 의도, 제품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 등을 설명한다. ‘라이브러리’라는 명칭답게 다양한 서적도 구비돼 있다. 조향사들이나 개발자들이 제품 개발에 영감을 받거나 참고한 책들을 함께 판매한다.

◇ 기획자에서 개발자로…러쉬의 ‘가장 이상적 인재상’

알레는 퍼퓸 라이브러리의 구상과 기획, 매장으로의 현실화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한 인물이다. 기획·마케팅 전문가지만, 동시에 제품을 직접 만드는 개발자이기도 하다. 알레는 러쉬의 ‘가장 이상적인 인재상’으로 평가받는다.

알레는 유럽 시장에 러쉬의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출생인 알레는 2001년부터 러쉬 이탈리아에서 통역사, 카피라이터, 브랜드 홍보대사 등으로 일했다. ‘언어적 탁월함’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러쉬의 독일, 프랑스, 스페인 진출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알레는 프랑스 지사 근무 당시 러쉬 공동 창립자인 마크 콘스타인이 주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진행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신제품 아이디어 경연이었다. 평소 제품 개발에 흥미를 갖고 있던 알레는 당시 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부터 4년 후 영국 본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PM)로 일하던 알레는 창립자 마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알레는 러쉬 연구실에 발을 들였다. 지난 3년간 알레가 개발한 제품 중 특허 출원을 받은 제품은 ‘샤워밤’ ‘고체 헤어젤’ ‘젤리마스크’ ‘젤리 치약’ ‘고체 모이스처라이저’ 등 5가지고, 한 가지 제품이 출원을 기다리고 있다.

◇ ‘미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현실화…LGBT 인권 운동도 주도

알레가 말하는 러쉬는 ‘실패’보다 ‘현실 안주’를 두려워하는 기업이다. 그는 "러쉬에는 미친 아이디어를 가진 열정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러쉬는 그들을 제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투자한다"고 했다. 누군가 개발한 제품을 당장 상용화할 수 없더라도 이런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획기적인 제품이 나올 것이란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러쉬는 전공 등에 따른 직무 제한을 두지 않는다. 누구든 신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알레는 "러쉬의 본질을 이해하고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할 때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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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러쉬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샤워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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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의 ‘샤워밤’이 대표적 결과물이다. 기존에 욕조에 풀어 쓰는 ‘배쓰밤’은 집에 욕조가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지만, 샤워밤은 샤워기로만 씻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알레는 "‘욕조가 없는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까?’란 의문이 들었고 샤워할 때도 배쓰밤과 같은 질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됐다"라고 했다.

러쉬는 동물보호와 인권 등 가치 실현에도 주력하고 있다. 성 소수자(LGBT) 난민, 탈북 청소년 등 소수자 인권을 위한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알레는 2015년 러쉬의 첫 번째 글로벌 LGBT 캠페인인 ‘#게이이즈오케이(GayisOK)’를 주도했다. ‘게이 이즈 오케이(Gay Is Ok)’ 문구가 적힌 비누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자금난을 겪는 LGBT 단체에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10만 개가 넘는 비누를 판매해 약 27만5900파운드(약 4억3000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알레는 같은 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LGBT 미래 리더’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알레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윤리적 가치 기준이 있고, 이는 각자에게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라며 "이를 존중하는 곳에 속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렵더라도 그걸 반복해야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선목 기자(letsw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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