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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4차산업혁명 시대인데…데이터 막으면 암 정복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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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무라트 손메즈 WEF 4차산업혁명센터장(왼쪽)과 신성철 KAIST 총장이 지난 10일 KAIST 본원에서 만나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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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데이터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암을 정복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0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에서 신성철 KAIST 총장과 만난 무라트 손메즈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4차산업혁명센터장은 과도한 규제의 폐단을 이같이 경고했다.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입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손메즈 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원동력은 기존 체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기술"이라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는데도 규제가 안 바뀌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은 어느 정도 늦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법과 제도가 기술에 비해 너무 뒤처지면 큰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렌터카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손메즈 센터장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되기 마련이지만 그럴수록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신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손메즈 센터장은 WEF가 KAIST에 신설한 '한국 4차산업혁명정책센터(KPC4IR)'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KPC4IR는 손메즈 센터장이 이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WEF 4차산업혁명센터와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과학기술정책 연구기관이다. 다음은 신 총장과 손메즈 센터장 간 일문일답.

▷신 총장=앞으로 KPC4IR는 한국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손메즈 센터장=르완다와의 협력 사례를 예로 들고 싶다. 르완다는 최근 드론을 이용해 각지에 흩어진 의료기관에 혈액 등 의료 물품을 수송하는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우리는 르완다 정부, 민간 기업, 대학, 시민사회, 국제기구 등과 협업해 새로운 규제 체계를 만들었고 제조 단계에서부터 드론이 규제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르완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드론 비행 네트워크를 갖추게 됐다. 그 덕분에 수혈에 대한 르완다 시민의 접근성은 2배 이상 높아졌다. 르완다는 작고 낙후된 국가였지만 규제 체계를 바꾸면서 불과 5개월 만에 드론 서비스의 국제 표준이 됐다.

▷신 총장=새로운 규제 체계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허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드론 허용을 누가 최종 결정했나.

▷손메즈 센터장=르완다 대통령이 결정했다. 르완다 항공 당국은 기존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항공 안전, 데이터 보안 문제 등을 들며 드론을 날리려면 모델별로 권한 승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매주 새로운 드론 모델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 규제로는 사실상 드론 서비스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WEF와의 공동 정책 연구 결과물을 가지고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다. 범부처 간 규제 조율도 중요하다.일본 사례를 들면 데이터 활용에 관한 규제가 7개 부처에 걸쳐 이뤄지는데, 한 부처에서는 허용되는 것이 다른 부처 소관에서는 금지되는 경우가 있었다. 규제 하나하나를 스파게티 면이라고 하면 면이 꼬인 채로 스파게티가 완성된 것이다. 이미 스파게티가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꼬인 면을 풀기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규제 프레임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부처가 모든 부문에서 기술의 미래 파급 효과와 잠재력을 평가해 규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신 총장=한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을 평가한다면.

▷손메즈 센터장=아직 한국 수준에 대해 얘기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다만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는 갈망과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대응 역량을 결정지을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데이터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지만 탁월한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많은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AI), 드론 등 연구를 충분히 진보시킬 수 있다. 앞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뿐만 아니라 데이터 저작권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신 총장=한국에는 예산·인력 등 연구 자원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개발(R&D) 예산은 미국의 10%밖에 되지 않고 AI 분야는 전문가 수가 미국의 2%에 불과하다.

▷손메즈 센터장=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게 사실이지만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인재 양성 측면에서는 사실 어느 나라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아이비리그 총장들조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연구자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 총장=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혁신, 둘째는 협력, 셋째는 빠른 규제 완화다. 그런데 한국은 규제 완화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느린 편이다.

▷손메즈 센터장=언제나 법과 제도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법과 제도 개선이 너무 뒤처져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 WEF 4차산업혁명센터는 어떤 프로젝트든 18개월 시한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대전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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