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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자율 기대했는데 간섭만 늘어"…실패한 서울대 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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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 서울대의 민낯 (下)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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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약 5평) 남짓 되는 학교 용지에다 수익사업을 위한 생산제조시설을 설치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법인이 출범했어도 서울대가 수익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절차는 국립대 시절과 똑같습니다. 교육이나 연구 목적 외로 학교 자산을 쓰려면 서울대 총장이 아닌 교육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단적인 예죠." (서울대 교수협의회 간부급 A교수)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높여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립대학법인으로 2011년 말 탈바꿈한 서울대가 '졸속'으로 이뤄진 전환 과정 탓에 혁신동력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일선 교수들은 짧은 기간에 서둘러 법인화 작업을 하다 보니 학교 운영에 기반이 될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 교수들은 학교 운영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법인화 이후 예산 편성·집행을 위해 설득해야 할 대상만 되레 늘었다. 서울대 부처장급 B교수는 "국립대 시절에는 교육부만 설득하면 됐지만 이제는 기획재정부에 국회까지 설득해야 한다"며 "(예산 심사기간에) 여의도에 매주 세 번은 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법인화 전에는 예산을 통으로 받으면 그 안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갖고 집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세목 하나하나가 검증 대상이다. 법인화 이후 오히려 '시어머니'만 늘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서울대법'과 학교 정관·학칙이 모순되는 또 다른 사례로 수익사업 관련 규정을 꼽았다.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익사업에 유연성이 필요한데 여전히 국립대 성격의 규정에 얽매어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수익사업을 통해 얻은 이윤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서울대법 제28조다. 조항에 따르면 수익사업 수익금을 학교 경영에 충당하도록 명기하면서 이를 수입대체경비로 분류해 직접 사용을 금지하고 법인회계 편입을 강제한다. 이 경우 법인회계 세출예산지침에 따라 사전에 보고한 내용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으며 다음 연도로 이월할 수도 없다. 막대한 수익을 내더라도 학교가 우선순위로 여기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

일선 교수들은 법인화 취지에 맞지 않는 제도 탓에 지금까지 창업·겸직 활동에서도 '족쇄'를 단 신세였다고 강조했다. 기존 서울대법이 영리업무나 겸직에 대한 별다른 조항 없이 국가공무원법 등을 준용해 관련 활동을 억제해 왔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난 8월 서울대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영리업무 및 겸직금지에 관한 특례' 조항이 신설돼 내년 2월부터 교직원은 총장 허가를 받아 사기업체의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 법인화 과정에 대한 부실 논란은 2010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서울대법)'이 날치기 통과되면서 커졌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서울대법을 다른 예산안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밀어붙여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심의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B교수는 "각종 소란 속에서 법인화 출범만 추구하다보니 학교 운영에 필요한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며 "서울대법과 학교 정관, 학칙 사이에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는 게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2013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한 인천대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제기된다. 인천대 운영에 근간이 되는 '국립대학법인 인천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많은 부분에서 '서울대법'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대 처장급 D교수는 "학교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업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설 사업을 위한 예산 편성이나 증액을 요청할 때 중앙정부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일종의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국립대학법인'이 어떤 의미인지 학내 구성원 단계에서부터 공감대를 쌓아야 했다고 분석했다. B교수는 "정부가 학교에 요구하는 공공성과 학교가 추구하는 수월성 사이에서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학교 인건비 지출은 증가했지만 여전히 우수 교원 채용에 목말라 하는 이유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간강사 확대 채용' 같은 사회적 책임에 일부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진한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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