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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매경포럼] 나는 소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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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말 편하다. 일반 택시라면 절대 안 올 곳까지 와주니 좋다." "친절하고 승차 거부도 없다. 짐이 많을 때 그리고 아기랑 같이 이용할 때 운전도 조심스럽게 해준다. 타다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 앱에 회원들이 올려놓은 이용 후기를 간추려 본 글이다. 그중에는 불만을 토로한 글도 있다.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험담도 있다. 그래도 타다 회원들이 택시 대신 이 서비스를 굳이 이용하는 이유는 짐작해볼 만하다. 타다가 회원 모집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1년 만에 120만명이 가입하고 지금은 회원 수가 150만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타다 이용요금은 택시에 비해 20%가량 비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을까. 여러 명이 함께 이동할 때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어린 아들·딸을 업고 안고 다닐 때에도, 많은 짐을 지녔을 때에도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범택시나 카카오블랙과 비교하면 여전히 저렴하다.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즐길 권리가 있다.

이런 소비자 150만명을 국회는 본체만체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6일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수정 의견을 제시한 여야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법안은 20여 분 만에 일사천리로 상임위를 통과했고 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차례다. 새 법률안은 소비자에게 불편을 강요한다. '관광 목적으로 6시간 이상 대여할 때에만' 타다를 이용하라고 규정했다. 또 공항이나 항만에서만 타다 차량을 이용하라고 규정했다. 몸이 불편한 소비자가 병원에 가려고 이용하면 불법이 된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타다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공항이나 항만에서도 타다 차량을 이용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새 법률안이 공포되면 1년 후 시행되고 그로부터 6개월 후엔 처벌 조항이 작동한다. 타다 회원에게 남은 시간은 1년6개월 정도인데 그 시간이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 150만명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드는 이 법률은 택시기사들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25만명 택시기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비자 150만명은 이처럼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한국 소비자가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원격의료 도입을 놓고 20년간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서도 소비자인 국민은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원격의료는 스마트폰·컴퓨터 등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의사가 진료하는 서비스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매우 편리하다. 정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두 차례 진행했는데 소비자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고혈압·당뇨 환자 8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시범사업에서 이용자 77%가 원격의료에 만족을 표시했다. 2차 시범사업에서도 도서벽지 주민 등 이용자 83% 이상이 만족한다고 했다.

정부도 원격의료를 도입하려 한다. 김대중정부 때인 2000년부터 도입을 추진했고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변함없이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진료를 도입했다. 우리 국회만 소비자들의 불편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

나는 소비자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이나 혁신을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야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라고 떠들고 다니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소비자 선택권을 억누르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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