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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하이힐 신은 게이` 된 멕시코 국민 영웅…누드 그림 뜨거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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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멕시코시티 예술궁전 `사파타 사망 100주년 특별전`에 전시 중인 그림 `혁명(La Revolucion·오른쪽)`. 멕시코 국민 영웅인 전설적 무장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하이힐 신고 백마 탄 누드 혁명가`로 등장해 인기와 분노를 동시에 끌고 있다. 왼쪽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 산맥을 건너는 나폴레옹` [출처 = `혁명`화가 파비안 차이레스 인스타그램·위키피디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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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민 영웅인 '무장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하이힐 신고 백마 탄 누드 혁명가'로 변신해 멕시코 예술궁전 그림에 등장해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사파타를 묘사한 그림이 게이(남성 동성애자)와 프랑스의 나폴레옹, '레이디 고디바'를 연상시켜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른바 '마초(macho·남성중심주의) 문화'가 강한 멕시코에서 보수적 농민층과 유족들은 "영웅을 게이처럼 그려놨다"면서 격분했다고 11일(현지시간) 밀레니오 신문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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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멕시코 혁명 당시 사파타가 이끈 농민·원주민 혁명군과 사파타의 생전 모습. 사파타가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1994년·EZLN)이 결성되기도 했다. [출처 = BBC 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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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그림'의 작품명은 '혁명(La Revolucion)'이다. 지난 9일 수도 멕시코시티 소재 예술궁전이 사파타 사망 100주년 특별전을 열면서 이 그림을 걸었다. '혁명'은 멕시코 화가 파비안 차이레스씨가 그렸다.

지난 9일 그림이 전시되자 사파타의 유족이 곧바로 '그림을 뜯어내라'며 반발에 나섰다. 손자인 호르헤 사파타 곤살레스씨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화가가 유명해지려고 할아버지를 게이로 묘사했다"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예술궁전이 당장 그림을 내리지 않으면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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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농민연합을 주축으로 한 사파타 지지자들 200여 명이 예술궁전 미술관에 난입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외설이며 역사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불온한 그림을 당장 불태우라"며 시위를 벌였다. [출처 = 멕시코 엘우니베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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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날에는 농민연합을 주축으로 한 사파타 지지자들 200여 명이 예술궁전 미술관에 난입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외설이며 역사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불온한 그림을 당장 불태우라"며 시위를 벌였다.

다만 젊은 층에서는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평이 오간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연결망(SNS)에서는 '예술 만세'라며 화가 차이레스씨를 응원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루이스 바르가스 산티아고 큐레이터도 엘우니베르살 신문 인터뷰를 통해 "왜 이 작품만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면서 "분노의 배경에는 남자는 남자다워야한다고 강조하는 멕시코 특유의 마초 정신과 동성애 혐오 분위기가 자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예술궁전에 걸린 '혁명'그림에 멕시코가 들썩이자 안드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AMLO·암로)멕시코 대통령은 1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파타 그림 논란에 대해 "나는 그림을 보고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서 "예술가들은 표현과 예술의 자유가 있고 검열을 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 부딪히는 유족들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둘 간의 원만한 화해를 돕겠다"고 말했다.

'혁명' 속에서 사파타는 멕시코 국기 띠만 두르고 몸을 살짝 뒤틀려 농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역사 속 실제 사파타(1879~1919년)는 지난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 엘리트 계층 독재와 미국 개입 등으로 어지러운 정국에서 독재 정권에 저항한 무장 혁명가다. 멕시코 모렐로스 주에서 태어난 사바타는 처음에는 작은 목장 주인이었다가 당시 쿠데타·독재 정권인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에 대항해 투쟁하면서 멕시코 혁명(1910~1915년)을 이끈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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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의 아이콘` 사파타는 마초(남성중심주의)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LGBTI(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중성) 무지개 혁명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논란의 `혁명` 그림을 그린 파비안 차이레스씨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LGBTI 혁명을 지지하면서 사회적 폭력에 반대한다는 그림 취지를 설명했고, 이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출처 = 파비안 차이레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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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사파타는 체 게바라 만큼이나 '아이콘'으로 인기를 끄는 혁명가다. 사파타는 1919년 4월 10일 무장 투쟁 중 사망했지만 지금도 멕시코 농민·노동운동이나 뮤지컬·연극·콘서트 도중에 "사파타가 살아있다, 투쟁은 계속된다"는 구호 속에서 등장한다고 한다.

짙은 눈썹과 풍성한 콧수염, 단호한 표정인 사파타는 '남부의 지도자(El Caudillo del Sur)'로 불리면서 혁명군을 지휘했기 때문에 마초의 상징으로 등장할 때도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LGBTI(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중성) 무지개 혁명'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고 BBC 문도가 전했다. 실제로 '혁명' 그림을 그린 차이레스 화가도 LGBTI 혁명을 응원하는 차원이라는 의도를 내비쳤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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