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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학생 30년, 직장 30년, 사회 위해 30년… 90년 인생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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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지난 6일 춘천 한림대학에서 한·일 관계 친선 교류를 도모하는 평화공존포럼이 있었다. 내가 한·일 관계를 가장 오래 체험했다고 해서, 한국 측 기조강연을 맡았다. 강연장에 들어갔더니 현수막에 '100세 철학자 김형석'이라고 씌어 있었다. 일본 회원도 150여명이나 되는데 좀 쑥스러웠다.

요사이는 나이를 팔아먹고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강연이 '백세나 되었으니까 들을 내용은 별로여도 얼마나 늙었나 보러 오라'는 광고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좋을지 다시 음미해 보았다.

조선일보

일러스트=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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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철학 교수는 "흑판을 향해서 30년, 흑판을 등지고 30년 살았더니 인생이 끝났다"고 고백했다. 학생 생활 30년, 교수로 30년을 보냈더니 늙어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때는 나도 60이면 회갑이 되고 5년 후에 정년을 맞으면 생산적인 인생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60을 넘기고 나니까 그때부터 강의다운 강의도 하고 학문에 대한 의욕이 솟았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끝났으나 사회 교육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했다. 오기에 가까운 의욕을 살려 보았다. 70 줄에 들어서는 '역사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 같은 저서를 썼다. 김태길 교수의 '한국인의 가치관'도 76세에 나왔다. 노력하는 친구들은 70대 중반까지 충분히 창의적 저작 생산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언젠가 철학자 정석해 선배님을 모시고 먼 길을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정 교수님이 92세 또는 93세였다. 나를 보고 "김 교수는 연세가 어떻게 되었더라?" 물으셨다. 76세라고 했더니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참 좋은 나이올시다!"라고 부러워했다. '나에게도 그런 나이가 있었는데…'라며 뭔가 후회하는 듯싶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계속 공부하고 저술 활동도 했다. 김태길 교수는 90세 가까이까지 꾸준히 일했다. 안병욱 선생은 92세 때 마지막으로 TV에 나왔는데 그날도 '정직하지 못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충고'를 남기고 있었다. 나도 90이 될 때까지는 정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글 쓰고 강의와 강연에 매달려 살았다. 김태길 교수가 제자들에게 "김형석은 철이 늦게 들어서 우리보다 더 오래 일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90이 될 때까지 우리는 75세부터의 연장(延長)이지,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교육을 위한 30년, 직장에서 일하는 30년, 사회인으로 열매를 맺어 남기는 30년으로 보아도 좋다는 사실을 나는 체험했다. 90을 넘기면 개인차가 심하니까 일률적인 평가는 어렵다. 나이는 연장할 수 있으나 일을 계속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할 수 있고 이웃과 겨레에 작은 도움이라도 남겨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은 남는 것이 없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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