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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화성 수사관들 "가혹행위 있었지만 죽은 동료가 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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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사서 확인… "폭행 등 행위는 우리가 안 해" 책임 떠넘겨

당시 감정서 작성했던 前국과수 직원 조사했지만 묵비권 행사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직접 수사에 나선 검찰이 당시 화성경찰서 수사관들이 범인 윤모(52)씨를 검거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 조작과 더불어 윤씨를 범인으로 몰아간 수사 기관의 심각한 위법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또 검찰의 기소, 법원의 판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과오를 바로잡지 못한 책임도 거론된다. 윤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하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은 1989년 당시 윤씨를 직접 조사해 자백을 받아냈던 장모 형사 등 퇴직 경찰관 3명을 최근 불러 조사했다. 장 형사 등은 검찰 조사에서 윤씨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행위를 한 사실을 일부 시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관들이 가혹 행위를 구체적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퇴직 경찰관들은 폭행 등의 행위는 이미 사망한 최모 형사가 했다며 책임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최 형사는 장 형사와 함께 윤씨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기억하며 지목한 인물이다.

윤씨는 언론 인터뷰,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당시 검거돼 조사를 받았을 때 경찰들이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물도 주지 않고 자백을 강요하는 등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윤씨에 따르면 경찰은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쪼그려 뛰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 시켰다. 발로 걷어차고, 가슴이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일단 살고봐야겠다는 생각에서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장 형사 등은 이전의 경찰 조사에서는 "윤씨가 범인이라는 국과수 방사선 동위원소 분석 결과에 확신을 갖고 조사했기 때문에 따로 가혹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장 형사, 최 형사를 포함한 수사 경찰관 4명은 범인을 검거한 공로로 특진 등 포상을 받았다. 퇴직 경찰관 일부는 경찰의 면담이나 전화 조사도 기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불법행위가 입증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다만 경찰도 당시 수사관들이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입건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 등 윤씨 재심 대리인들은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당시 경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1989년 7월 25일 밤 체포된 윤씨는 범행을 계속 부인하다 이튿날 오전 5시4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자백한 것으로 돼 있다"며 "조사 첫날부터 잠을 재우지 않은 사실은 수사 기록, 항소심 판결문 등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장 형사 등의 진술, 과거 경찰 수사 기록, 윤씨 측의 재심청구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진실을 밝힐 계획이다.

한편 국과수의 감정서 조작과 관련해 검찰은 당시 감정서 작성을 담당했던 전직 국과수 직원 A씨를 최근 조사했으나 A씨는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로부터 윤씨를 포함한 수사 대상자 여러 명의 체모를 받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방사선 동위원소 분석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아 감정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그러나 윤씨 체모의 분석 결과와 합치하도록 범행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체모의 시료와 수치가 조작된 사실이 확인됐다.

[수원=권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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