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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슈 국회의장과 한국정치

박관용 “국회의장은 방망이만 두드리는 자리 아니다…중재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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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81) 전 국회의장은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당일(2002년 7월 8일) 당선 인사에서 “중립을 위해 의장 임기를 마치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국회의장 임기 후 불출마’ 관행의 시작이다. 의장 당선과 동시에 박 의장은 당시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 탈당계를 냈다. 훗날 법에도 명시(2005년 국회법 개정)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가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영원한 의회인으로 기억되고 싶다』(2015년)는 그의 책 제목처럼, 국회의 중요성과 자부심을 강조한다.

중앙일보

박관용 전 국회의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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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 전 의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의 국회는 민주주의가 고장 난 상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그 어느 정당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 때문에 국민이 고생”이라고 했다.

특히 문희상 국회의장의 조정 역할 미비를 꼽았다. 박 전 의장은 “패스트트랙 불법 사ㆍ보임 논란이나 이번 예산안 통과 등을 보면서 중재자 역할에 대한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단순히 다수(여당)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방망이(의사봉)만 두드리는 사람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Q : 20대 국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A : 정당 정치라는 건, 정책과 이념이 다른 정당들이 잘 어울리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국회엔 이런 타협 능력이 없다. 여당의 경우 양보를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일차적인 책임이 바로 여당의 야당 무시다.

Q : 여당이 양보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A : 권력을 더 가졌기 때문이다. 가진 자가 양보하는 거다. 그게 민주주의다. 예를 들어 선거법 개정안의 경우도, 이미 의석을 더 선점한 여당이 자기 뜻을 관철하려 하기보단,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아량을 보여줘야 한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쓰려 하면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Q : 한국당은 어떤가.

A : 무턱대고 다 투쟁을 해버리면 명분이 없다. 싸우려고만 들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 야당도 여당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더 많이 지지받은 세력이 여당이다. 이들의 입장을 존중해줘야 하는데, 여든 야든 상대방을 없애버려야 할 세력으로 보는 것 같다. 정치 실종이다.

말을 이어가던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이라는 자리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며 “이참에 언론에서도 국회의장의 중요성을 환기시켰으면 한다”고 했다. 3권분립 국가의 한 축인 입법부 수장인데, '인품 있는 다선의원' 정도로만 여긴다는 얘기다.

Q : 정국을 어떻게 풀 수 있나

A : 국회의장이 풀어야 한다. 의장이 일방적으로 누구 편을 들어선 당연히 안 되고, 여당을 불러선 야당에 양보해달라고 설득하고 야당을 불러선 고집 너무 부리지 말라고 해야 한다. 타협을 끌어내야 하는 게 의장의 역할이다.

Q : 과거 의장 시절엔 어떻게 했나.

A : 나는 수시로 의장 공관실에 여야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불러 저녁을 먹었다. 당시 여당 원내총무에겐 다수라고 횡포를 부리지 말라고 여러차례 경고를 했고, 야당 원내총무에겐 지금이 독재정권도 아니고 무조건 싸우려고만 하지 말라고 했다.

박 전 의장은 “나는 의장을 하면서 후대에 오욕을 남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어 “사회만 보는 게 아니라 조정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정국 사태에서도 중재자 역할 안 하고 본회의에서 방망이 들고 숫자만 셀 거면 뭐하러 있나. 방망이 두드리는 건 그냥 국회 사무총장 시켜도 된다”고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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