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증 응급환자 40% 음주
저온서 일할 땐 옷 세 겹 이상
수시로 손발 마사지, 스트레칭
체온 36.5도 유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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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권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엔 저체온증과 같은 한랭 질환이 기승을 부린다. 저체온증은 심부 체온이 35도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심부 체온은 피부가 아닌 장기·근육 등 몸 안쪽 깊숙한 곳의 체온이다. 체온이 35도 아래로 내려가면 심장·폐·뇌 등 중요한 장기의 기능이 떨어진다. 경증(32~35도)일 땐 몸이 떨리고 감각이 저하되는 수준이지만, 심부 체온이 32도 아래로 내려가면 근육이 경직되고 맥박이 늘어지며 호흡 기능이 저하되다 의식을 잃는다.
추운 날씨엔 술로 몸을 녹이려는 사람이 많다. 따뜻한 국물에 술 한잔 기울이면 몸이 풀리고 속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직장인 정모(56)씨는 요즘 술 모임이 잦은 편이다. 얼마 전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날씨에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아찔한 경험을 했다. 식당에선 숯불 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셔 더웠는데, 귀갓길엔 유난히 한기가 느껴지고 몸이 심하게 떨렸다. 피부가 창백해지면서 말이 잘 안 나오고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이상을 느낀 그는 응급실을 찾았고 의사에게 체온이 떨어져 나타난 증상이란 얘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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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도 아래로 내려가면 의식 잃을 수도
몸속에 들어온 알코올은 분해 과정에서 혈관을 확장한다. 이때 혈액이 장기가 아닌 피부로 몰리면서 붉게 달아오르고 뜨거워진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오히려 몸 내부의 열기가 피부를 통해 다시 빠져나가면서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술을 마시면 피부로 향하는 혈액량이 늘어난다”며 “체온 손실이 커져서 심부 체온은 내려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몸은 약 36.5도를 유지한다. 이는 뇌의 시상하부와 체온 조절 중추신경계 덕분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중추신경계와 열을 생산하는 기능이 떨어지면서 저체온증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의 ‘한랭 질환응급실 감시체계 통계’(2014~2018)에 따르면 저체온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의 40%는 응급실 도착 시 음주 상태였다. 추위 속 음주로 인한 저체온증은 서서히 발생하기 때문에 인지하기가 어렵다. 지나치게 몸을 떨거나 피부가 차고 창백해지면 저체온증 초기 증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인과 영유아는 저체온증 위험군이다. 강 교수는 “고령층은 기초대사량이 낮아 신체 열 발생량이 적고, 영유아는 몸집에 비해 체표면적(신체 표면의 면적)이 넓어 체온을 유지하는 데 취약하다”고 말했다. 원래 몸은 추위에 노출되면 말초 혈관을 수축하고 신체를 떠는 등 체온을 올리기 위한 행동을 한다. 그러나 노인은 이런 보상 반응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자율신경계 이상이나 혈관의 방어 기능의 저하로 열 손실을 줄이거나 열 생산을 늘리는 능력이 떨어져서다. 소아 역시 신체 표면의 면적이 크고 피하 지방량이 적어 체온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만성질환자도 추위에 약하다. 혈관의 이완·수축 작용을 통해 열을 내보내고 보호하는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혈관 질환, 혈액을 공급하고 열을 발산하는 심장 기능이 떨어진 심장 질환이나 뇌의 운동 중추가 망가져 체온이 떨어져도 열을 생산하는 근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뇌졸중·치매·파킨슨병을 앓는 사람들은 추위 노출을 피하는 게 최선이다.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었을 땐 119에 신고하고 환자를 따뜻한 곳으로 옮기는 게 우선이다. 대전을지대병원 응급의학과 서상원 교수는 “저체온증은 피부 체온보다 몸의 중심 체온이 떨어진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피부만 감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갑자기 몸을 뜨겁게 하면 오히려 급격한 온도 변화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몸을 천천히 녹여주며 가까운 응급의료센터로 후송해 적절한 처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식이 있는 경우엔 따뜻한 음료 섭취가 도움될 수 있으나 의식이 없는 환자에겐 위험하다. 음료가 기도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탓이다. 또 의식이 있더라도 술이나 커피 같은 음료는 열 손실을 촉진하므로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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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영유아·만성질환자 저체온증 주의
저체온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보온이 중요하다. 부득이 저온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면 세 겹 이상 옷을 입도록 한다. 속옷은 땀과 수분을 잘 흡수하는 양모·실크·합성섬유로 만든 것을 입는다. 속옷 위에 입는 옷은 땀을 흡수하고 젖은 상태에서도 보온 효과가 유지되는 옷을 착용한다. 겉옷은 바람을 막고 환기가 잘 되며 방수 기능이 있는 옷을 고른다. 실내에선 두께가 있는 카디건이나 솜·오리털 소재의 조끼를 입는 것이 효과적이다. 원활한 혈액순환과 체온 유지를 위해 손발을 자주 마사지하고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강재헌 교수는 “장갑이나 수면 양말, 목도리, 스카프 등을 활용해 방한에 신경 쓰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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