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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죄질 나쁘다"면서 조국 풀어줬다···법원 '줄타기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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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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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의 범죄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구속의 필요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정치권과 검찰 사이에서 ‘줄타기 판결’을 내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회 근간인 법치주의 후퇴시켰지만…”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권덕진 부장판사는 27일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조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유를 언론용 자료와 검찰에 보내는 '기각사유'에서 설명했다. 권 부장판사는 서울동부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 사건 범죄혐의는 소명된다.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또 검찰에 보낸 기각사유에는 “직권을 남용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결과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의 주거가 일정해 도망의 염려가 없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으며 ▶배우자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점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범행을 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설명했다.



“법원, 정치권과 검찰 사이 절충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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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서울동부구치소로 이동해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 앞에 보수단체 회원들(윗쪽)과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이 구속 영장 촉구와 기각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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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정치권과 검찰을 의식한 ‘줄타기 판결’을 했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검찰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된다고 인정했다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법원이 어렵게 정치권과 검찰 사이 절충점으로 갔다”고 평가했다.

백성문 변호사 역시 “사실상 무승부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만약 영장 기각 사유에 ‘범죄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으면 검찰은 치명상을 입었을 텐데 명분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구속될 경우 검찰 수사가 훨씬 탄력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점에서는 검찰이 아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기각 사유에 혐의가 소명됐다는 표현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검찰을 많이 배려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검찰과 청와대 모두 법원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동부지검은 “죄질이 나쁜 직권남용 범죄를 법원에서 인정한 이상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청와대는 “이번 결정으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얼마나 무리한 판단인지 알 수 있다”며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판정승” vs “정경심의 깊은 뜻”



반면 검찰이 승리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판사 출신 김봉수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번 조국 구속영장심사는 검찰이 좀 많이 이긴 판정승”이라며 “범죄사실 소명뿐 아니라 죄질이 나쁘다는 말로 유죄 입증이 끝났다는 뉘앙스다. 조 전 장관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밝혔다. 수사 초기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57·구속 중)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 역시 “기각 사유에 ‘범죄 혐의는 소명됨’이라고 적힌 건 검찰의 99% 승리”라고 평가했다.

반면 판사 출신 이정렬(법무법인 동안) 변호사는 “정 교수께서 구속적부심이나 보석 신청을 하지 않으신 깊은 뜻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영장 기각 사유에 정 교수가 거론된 만큼 조 전 장관의 구속을 막기 위해 정 교수가 구속 상태를 유지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임무영 서울고검 검사는 “불구속 수사나 불구속 재판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며 “구속은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조치라는 관점에서 이번 조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은 타당한 조치”라고 밝혔다. 임 검사는 “다만 그런 기준이 남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었는가는 늘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명분 챙긴 검찰, 울산 수사 속도 낼 듯



조 전 장관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검찰 수사에 제약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법원이 범죄 혐의를 인정한 만큼 울산 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 수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단 검찰은 4개월 동안 진행해온 조 전 장관 가족의 입시 비리 및 사모펀드 의혹 수사를 올해 안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검찰이 조 전 장관과 부인 정교수를 공범 관계로 보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고형곤)는 30일 조 전 장관을 불구속기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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